삶은 기억들을 제멋대로 엉키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며 이러한 사실에 순응하고 점차 익숙해진다. 으레 그레 왔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울창하게 숲을 이루어나가는 기억들. 비슷한 기억들은 합쳐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진다.
그런데 평이하게 반복되는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우리는 이따금 생경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뒤죽박죽 엉킨 기억의 실타래가 순식간에 풀리는 일. 길게 늘어뜨린 기억은 유독 우리에게 적게는몇 년에서 길게는수십 년 간의 세월을 건너뛴 풍경을 보여준다. 열쇠는 우리가 매일 겪는 익숙한 일상 속에 있다.
날씨.
이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날씨는특별한 날씨나 인상적인 날씨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순간, 날씨는 기억의 저편으로 우리를 인도하곤 한다.맑음, 흐림, 비, 눈, 바람, 온도 등으로 설명되며 우리 삶의 배경처럼 시간에 따라 변하는 날씨.
비 오는 날씨.
비가 오는 날 풍겨오는 옅은 물냄새, 그 안에서 일렁이는 기억들. 비 오는 날 새하얀 꽃을 피운 수련. 초록 연잎을 쉼 없이 굴러가는 둥근 빗방울. 오래된 기억을 따라 시선을 쫓아가다 보면 날씨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원형에 당도한다.
눈 오는 날씨
이렇게 기억들을 훑고 돌아오면 눈앞에 있는 현재의 날씨 역시 다르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유달리 눈이 많이 내리던 지난 12월.
눈이 오는 날씨에 대한 기억. 어린 시절의 학교 운동장에 소복하게 쌓여 있던 그날의 풍경. 눈이 내리며 흰색으로 물들어가는 교실밖의 모습.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뛰어 나가는 아이들. 고사리 손으로 눈을 뭉쳐만든 눈사람. 멍하니 눈 오는 풍경을 바라보면 사방에서 날아오는 작은 눈덩이들. 옷에 묻은 눈을 털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높은 나무 가지마다 피어있던 하얀 눈꽃.
반복되는 듯한 날씨는 기억을 담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기억은 점차 추억으로 변하며 빛이 바랜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살아가면서 점차 무뎌진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보이는 단조로운 일상. 눈에 익은 풍경은 보지 않아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어느 날 그러한 일상 속에 오래된 기억 속을 덧대며 우리가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시간들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