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1

by 한 율


영에서 원


0에서 1. 돌이켜보면 대다수의 일들은 첫 발걸음을 옮길 때가 가장 힘들었다. 마음속에서 쉴 새 없이 피어나는 갖가지 고민이 시작도 전에 발목을 잡았기 때문일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로운 도전의 순간마다 상기하곤 한다. '뭐든지 시작만 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라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줌과 동시에 시작을 가로막는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고 빨리 실행하기 위함이다.



새로운 출발. 무거운 첫 발걸음을 옮기며 나아가는 영에서 일. 막상 출발하고 나면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뗀 것처럼 발걸음이 점차 가벼워진다. 박차를 가하며 달음박질할 때는 산들바람이 옷깃을 훑고 가듯이 상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순풍에 돛을 단 듯이 나아가는 초중반. 눈앞에 펼쳐진 맑은 날씨처럼 앞으로의 여정은 순조로워 보인다. 1이 아닌 그 이상, 10 혹은 100 이상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을 상상하며 한동안은 희망을 품고 나아간다.



하지만 언제나 마냥 달릴 수만은 없다. 달리다 보면 점차 숨이 차오르기 마련. 언젠가는 멈춰 서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이번에는 언덕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힘이 다하였음을 깨달았다. 발걸음을 멈추자, 언덕에서 서서히 밀려 내려가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내가 서있는 곳은 평지가 아닌 원임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 끝에 결국 멈춰 서는 것을 선택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연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집을 부리며 나아가려 발버둥 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았다. 어떤 것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연료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은 외부로부터 나아갈 연료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침전하며 골몰히 해답을 찾아보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답을 찾아 외부로 향했다.



언덕을 내려오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여정. 영영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기에 발길을 돌린다. 빠르게 내달리듯 내려온 내리막길. 위에서 내려다보니 지나온 길의 경사가 아래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높아 보였다. 0에서 1이 아닌 0에서 0. 그럼에도 다시 1로 나아가기 위해 힘을 주어 발을 굴린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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