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삶의 구원은 존재하는가? 쉽사리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꺼내어 글로 적어 본다. 분명 삶의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정답처럼 보이는 해결책도 상황에 따라 무용지물로 변할 수 있다. 누구에게는 해결 방법으로 작용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새로운 문제를 더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삶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와 관련되어 논의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그 답을 자신의 내부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자!'라며 수차례 다짐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삶의 고비와 맞닥뜨리면 우리의 의지는 서서히 꺾이기 시작한다. 마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듯이 삶의 파도가 연달아 몰아쳐 마음을 쉴 틈 없이 뒤흔들기 때문이다. 거센 파도에 뒤엉키는 과정에서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감정이 밀려 올라올 것이다. 물론 그러한 감정들은 우리의 예상과는 반대로 흘러가며 삶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화'나 '짜증'과 같이 격정적이거나 격렬한 감정은 생각보다 지속시간이 짧은 편이다. 한없이 고되게 느껴지는 역경을 마주하다 보면 '분노'와는 성질이 다른 감정이 두드러진다. 그 감정은 마치 치즈가 작은 쥐에 의해 조금씩 갉아 먹히듯이 조금씩 줄어들다 끝내 '고갈'될 무언가와 같다. 이러한 감정은 블랙홀처럼 주위의 모든 것을 서서히 잠식한다. 서서히 말라비틀어져 가는 기분을 느끼며 변화의 임계점에 섰을 때, '과연 삶에 구원은 존재하는가'라며 나지막이 자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적막한 공간 속에 홀로 서 있었다. 뻥 뚫린 공허한 공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바람 소리만 스칠 뿐, 그 외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시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을 가리던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며 이따금 몇 줄기의 햇살을 흘려보냈다. 햇빛은 어깨를 타고, 지면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무언의 현상 속에 이런저런 의미를 붙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저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처럼 자연스럽게 눈앞에 마주하는 풍경을 흘려보냈다.
특정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대하게 되는 것에 지쳤기 때문일까. 무언가에 기대며 바라는 것이 무용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이에 대해 쉽사리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그저 스스로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이 자못 애석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바라거나 구할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마주하는 현상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중단하였다. 눈에 맺혔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형상처럼 그저 살아가며 경험하는 수만 가지 일 중 하나일 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수월했다.
빠르고도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 눈앞을 지나쳐가는 순간들은 그 당시에는 분명 느리게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뒤돌아볼 때면 세월은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쏜살같이 지나갔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시간은 층층이 쌓여가며 그동안 느꼈던 '희'와 '비'를 중화시켰다. 비 온 뒤에 굳어진 땅처럼 단단하진 않더라도 무른 흙을 밟더라도 군말 없이 넘기는 법을 익혔다. 그렇게 마음에 기대를 품지 않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뜨는 삶의 무지개.
그럼에도 삶은 아름다운가? 쩍쩍 갈라진 메마른 현실에 뿌리를 내린 희망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꽃을 피운다. 그러한 순간이 언제 올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렇듯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기에 오롯이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한 행복은 우리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형언할 수 없는 먹먹함을 남긴다. 지이이잉 귓전에 맴도는 찡한 울림. 그것이 다시 우리를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발걸음을 옮기자, 말라붙은 진흙이 가루처럼 흩날리며 떨어진다.
삶은 아름답다.
이제 내가 마지막으로 하나 묻고 싶은 게 있거든?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예?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영화 <박하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