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오브 원

by 한 율
단 하나뿐인


원기둥 형태의 파이프들 사이에서 떠올리는 '원 오브 원.' 황량한 공터에 널브러진 듯 불규칙하게 쌓인 둔중한 파이프들. 툭 건들면 금방이라도 우르르 무너질 것 같지만 균형을 이뤄 멈춰있는 원. 마치 돋보기로 무언가를 들여다보듯이 둥근 파이프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유심히 바라본다. 인적이 끊긴 공간 속에서 단 하나뿐인 무언가를 그리는 시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비어 있는 공간을 생각으로 채우는 것이 점차 익숙해진다.


멈춰있는 듯한 배경 뒤로 까마귀들이 내려앉자, 잇달아 '까아악- 까아'하고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진 장소는 을씨년스러운 공간으로 변해 음울한 기운을 내뿜었다. 자연스럽게 뒤로 돌리게 되는 발걸음. '까마귀 울음소리'라는 한 가지 요소가 더해졌을 뿐인데 공간의 성질은 이전과 사뭇 달라졌다. 이렇듯 하나의 변화가 더해지면 다른 무언가로 변하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삶일 수도 있다.


'단 하나뿐인 것'도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복잡하지 않은 사유 속에서 내던지듯 무심코 결론을 툭 던져놓는다. 어떤 것들은 생각할수록 집요하게 꼬리를 물고 늘어져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알맹이를 놓치면 쉽게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다. 빙그르르 돌며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파이프처럼 끊임없이 돌아가는 사고의 스위치를 끈다. 특별한 그 무언가에 한 생각은 일상의 상념과 섞여 연소한다.



알다가도 모를 삶. 서두를 떼고 나면 발이 달린 듯 일정한 흐름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글과 같이. 우리의 삶은 어느 순간 궤적을 이루며 각자의 항로를 따라 나아간다. 길목에 서서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면 다른 이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그 여정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배관 사이를 통해 보이는 풍경처럼 삶의 단면을 잘라 보면 그 전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같은 풍경을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지긋이 바라본다. 파이프 너머 채석장처럼 쌓인 돌들이 점차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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