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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걸린 생각들
별을 바라보는 법, 그걸 잊을 즈음 넌 어른이 된다.
2008년 도비도에서
by
한 율
Apr 24. 2022
섬과 바다 그 사이에 배 (2008), 사진: 한 율
"지금 넌 이해가 안 되겠지만 별을 바라보는 법을 잊게 될 때가 올 거다..."
"바보도 아니고 누가 그걸 잊어?"
"나중에 이걸 다시 떠올릴 땐 너도 어른이 될 거야."
"날도 밝은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저기 배 지나간다!"
2008년 그해 여름의 나는 이름도 모를 섬 사이에서 지나가는 배를 바라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2022년 여름으로 향하는 봄날, 나는 그 사진 속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가까우면서 동시에 멀게 느껴지는 시간의 간극.
얼마 안 되는 과거 같은데 그때는 지금과 비교하면 많은 게 없었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SNS도 마땅히 없었고 볼거리도 지금보다 많이 없었고 하지만 동시에 꿈을 잃게 될 거란 걱정, 실패에 대한 두려움, 금융위기, 삭막함 등도 없었다.
알 수 없는 은은한 활기가 배어있던 시절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은은하게나마 몇 개의 별이 조각처럼 떨어져 빛나고 있었다.
그때 내가 꿈꾸던 미래는 이미 내가 지나온 어제가 되었다.
'나도 저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
'
어릴 때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순수하게 되뇌었던 말이 새벽 공기를 사이로 흩어진다.
후덥지근한 여름이었으나 밤바람에는 선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계절은 항상 다음 계절로 흐르는 문을 열어두기 때문이리라.
도비도 바닷가 풍경 (2008), 사진: 한 율
어린 시절부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기록의 대상은 주로 나를 둘러싼 풍경과 자연이었다.
14년의 세월이 흐른 2022년, 2008년 내가 사진으로 남긴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과거의 나는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이 풍경들을 담았을까 곰곰이 반추해 본다.
그리고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지 않는 지금, 어쩌면 이 사진들은 나에게 별을 바라보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바다와 섬, 그리고 그 사이를 떠다니는 배들.
밤하늘의 별과는 사뭇 거리감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진은 내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법을 다시금 알려주고 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잘 안다. 잘해야 꿈속에서 나마 어렴풋이 손을 뻗을 수 있을 뿐이다.
다만 한 번쯤은 다시 느껴보고 싶은 것이 있다.
2008년 여름밤, 어둑한 밤하늘 아래에서 밤공기와 함께 흐르던 생각과 감정을 다시 잡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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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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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노래와 사진. 그 안에 울림을 담는 한 율입니다. 코레아트(Coreart)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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