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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율 Jul 15. 2022

삶은 계란이다

삶은 달걀, 사진 출처: 하이닥(다음 뉴스)


 우리는 누구나 삶은 무엇일까 하며 고민했던 시기가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아직까지 얻지 못하였다.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삶에 대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질문들은 결국 '삶'이라는 본질을 파고 들어가야만 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존재론적인 고찰을 요하는 질문은 이따금씩 튀어나와 우리에게 사유의 시간을 건네주곤 한다.


 옛날에 허무개그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올 듯한 작은 미니북의 이름은 바로 'Fun Fun 한 허무개그 모음집' 제목만 보더라도 아재개그가 수두룩하게 담겨 있을 법하였지만 그 당시 초록색의 북커버가 마음에 들어 샀던 기억이 있다. 손가락 3마디 정도의 작은 책장을 넘기면 회색빛 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허무개그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바로 '삶은 계란이다.'




로댕, 생각하는 사람, 파리 로댕 미술관

 

'삶은 계란에 대한 유머'는 일종의 콩트처럼 대화로 제시되어 있었다. 그 내용은 정말 간단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 '삶은 무엇일까?'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 소풍을 온듯한 어린아이가 다가와 서 있다. 그러자 생각하던 조각상은 꼬마를 쳐다보며 물어본다. "애야, 삶은 무엇이니?" 꼬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바로 대답한다. "삶은 계란인데요." 그러고선 꼬마는 한 손에 삶은 계란이 든 봉지를 돌리며 다른 손으로 병에 든 사이다를 움켜쥐고 유유자적 그 앞을 지나간다.


 그것을 처음 보았을 당시에는 '이게 뭐야.' 하며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삶에 대한 질문과 고민들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삶에 치여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새벽, 문득 예전에 보았던 '삶은 계란 유머'가 떠올랐다. 그러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옛 속담과 '삶은 계란'이라는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졌다. 날계란은 살짝만 바위에 내리쳐도 힘없이 터져버리지만 삶은 계란은 같은 상황에서 껍질만 깨질 수도 있다.


 아직 삶에 대해 충분한 경험이 쌓이고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 논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삶은 정말 단단한 바위 같다고 느껴진다. 바위처럼 단단한 벽 앞에 가로막혀 쉼 없이 그것을 깨려고 노력하였지만 언제나 깨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어쩌면 마치 계란과도 같은 삶. 결과를 알고서도 부딪혀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이왕이면 껍질이 깨지자마자 그대로 터져버리는 날계란보다 삶은 계란으로 알맹이를 남기고 싶다. '삶은 계란이다.' 실패를 감내하며 다시 털고 일어나 도전해야 하는 우리에게 어쩌면 도전이 남기는 노른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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