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우연처럼 너를 만나는 날

by 카르페디엠

출판사 대표는 밝은 얼굴로 회의실 문을 열며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행사를 기획했어요.
유튜브 뮤지션 한시우 씨 아시죠?
출간되는 에세이집과 콜라보 북토크를 진행하게 됐어요.”

순간, 정은하의 손에 쥐고 있던 펜이 멈췄다.
‘한시우’라는 이름이 들리는 순간, 심장이 짧게 뛰었다.

“초청 게스트로 미니 콘서트도 열 계획이에요.
작가 사인회랑 북토크 구성은 은하 씨가 총괄해줘요.”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적인 반응처럼 보였지만, 속은 다르다.
속이 미묘하게 일렁였다.
그가… 오프라인에서 눈앞에 나타난다.


라이브 창에서 목소리로만 듣던 사람,
어떤 날은 글로 안부를 전했던 사람.
그가 내 앞에 온다.


며칠 후, 행사장 리허설 날.
은하는 행사장을 둘러보며 체크리스트를 점검했다.
화이트 톤의 조명,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따뜻한 오후 햇살.
아담한 무대 위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한시우.


머리가 살짝 헝클어져 있었고,
검은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수수한 모습.
그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손끝에서 쏟아지는 멜로디는 익숙했다.
라이브 방송에서 들었던 바로 그 곡이었다.


은하는 숨을 들이켰다.
말을 걸어야 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마음은 가깝지만, 현실은 아직 멀었다.




그 순간, 시우가 고개를 들었다.
카메라 리허설 중이던 스탭들과 눈이 마주치다
무심히 주변을 둘러보다, 무대 뒤편을 향해 눈길이 머물렀다.


정은하.


그녀는 스탭 유니폼도 아닌, 조용한 톤의 베이지빛 셔츠에 회색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그는 묘하게 시선이 머물렀다.
자꾸 시선이 가는 여자였다.

시우는 순간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이 사람일까.”


물론 가능성은 없다.
화면 너머, 텍스트 한 줄이 전부였던 누군가를,
이렇게 바로 알아볼 수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반응했다.


행사 당일.
은하는 무대 뒤 담당 자리에서 행사진행을 체크하고 있었다.
시우는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뮤지션 한시우입니다.
오늘, 저에게 따뜻한 말을 남겨주신 어떤 독자에게 드리는 곡으로 시작하고 싶어요.”


은하는 깜짝 놀라 시선을 들었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 분의 닉네임은… 고래책방이에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시우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연주를 시작했다.

은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방금 한 그 말은, 온전히 그녀에게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날, 음악은 유난히 따뜻했다.
노래는 멜로디보다 마음이 먼저 다가왔고,
그의 목소리는 그 어떤 악기보다 은하의 심장을 흔들었다.




행사 후.

사인회가 끝나고 관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을 무렵,
은하는 무대 정리를 도우며 무심코 피아노를 바라봤다.
거기에 그가 서 있었다.

시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무대 정리까지 도와주시네요.”
“아… 네. 행사진행 총괄이었어요.”
“그럼… 혹시 고래책방님도 오늘 오셨을까요?”


은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시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분 댓글을… 자주 봐요.
오늘 노래, 전해졌을지 모르겠네요.”


은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지금 누구에게 말하는 걸까.
내가 그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걸까?


그리고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말하고 싶었다.
“그게… 저예요.”
그 한마디면 되는 건데.

하지만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삼켰다.
그래서 그녀는 미소만 지었다.


“아마… 전해졌을 거예요.”


그리고 둘은,
아직 서로의 이름을 모른 채,
그 날의 첫 대화를 마쳤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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