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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30년 전 질문, 오늘의 울림!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고

by Oh haoh 오하오

리처드 도킨스를 포함한 서른 명의 사상가가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각자의 관점으로 답한 이 책을 처음 집어 든 이유는 순전히 도킨스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도킨스의 책을 대부분 읽었기에 이 책도 찾아보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1995년 미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서른 해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았고, 어떤 대목은 오히려 오늘의 논의보다 앞서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품었다는 것이 신기했고, 당시 나는 너무 어리거나 무지해서 이를 깨닫지 못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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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글에서 도킨스는 타당하지 않은 근거로 ‘전통·권위·계시’를 지목하며, 우리가 ‘믿음’이라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비논리적일 수 있는지 날카롭게 짚는다. 그 대목을 읽다 보니 언젠가 읽은 「개소리에 대하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옳은 말도 틀린 말도 아닌 채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언설,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기에 고쳐질 가능성조차 없는 언설. 도킨스는 그런 위험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묻는다. 진리를 탐구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근거로 삼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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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데닛의 글 「실수가 우리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가」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실수를 숨겨야 할 흠이 아니라 발전을 이끌어 주는 동력으로 바라본다. 데닛은 “실수를 감추지 말고, 오히려 대담하고 흥미로운 실수를 저질러라”라고 단언한다. 남들 눈에 멍청해 보일지라도 독창적인 시도라면 충분히 값지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실패로 낙인찍지 않고, 철저한 감식가가 되어 그 안에서 교훈을 길어 올리는 태도다.

책 곳곳엔 오래 마음에 남을 문장들이 숨어 있다. “예술은 제한이다”라는 선언은 표현의 자유와 제약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고, “아이들은 평균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는 구절은 교육자로서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새로움을 획득하려면 경계를 느슨하게 하면 된다”, “단지 그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몇 개의 메모만으로 충분하다”와 같은 조언은 창작이 거창한 영감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메모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농경은 한두 종을 제외한 모든 식물을 한순간에 잡초로 만들었다”는 문장은 문명의 이기와 생태의 양면성을 단숨에 드러내며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책을 덮고 다시금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린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우리는 그런 질문을 거의 하지 못한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 바쁘기 때문이다. 생계를 유지하고 관계를 돌보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거대한 물음은 쉽게 뒤로 밀린다. 그럼에도 나는 다짐한다. 그래서 더 멈춰야 한다고.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살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어쩌면 그런 질문이야말로 삶의 방향을 비추어 주는 나침반이 되어 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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