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위계, 그리고 고귀한 인간
칼 세이건의 책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도 그렇다. 진화론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이 책은 과학의 언어를 넘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인간을 실험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을 통해 인간을 바라본다. 바로 침팬지다. 침팬지는 유전적으로 오랑우탄보다 인간과 훨씬 가깝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98.8% 동일하고,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약 97% 정도다.
지구 밖 외계 생명체가 우리를 관찰한다면, 인간과 침팬지를 같은 종, 또는 같은 속으로 묶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이 대단한 걸까?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나는 ‘언어’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동물들도 협력하고, 도구를 쓰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공통의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다. 그것은 거짓, 신화, 상징, 그리고 믿음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언어가 허구를 가능케 했고, 허구가 문명을 만들었다.
모든 생명은 종의 보존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종의 보존만을 위해 싸움과 갈등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건 너무도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은 '위계'라는 질서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위계를 억압의 기제로만 보지만,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안정과 에너지 절약의 기술이었다.
알파 수컷은 번식에 유리하고, 다른 수컷은 그 질서를 받아들이는 대신 생존의 안전을 얻는다. 이때 사용되는 도구는 ‘신호’다. 싸우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동물들은 몸을 낮추거나, 약점을 드러내거나, 땅을 본다. 침팬지도, 오랑우탄도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 신호에 언어라는 정밀한 도구를 얹었다.
‘난 너를 인정해.’
‘우린 같은 편이야.’
‘함께하자.’
이러한 표현은 인간의 본능적 생존 방식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토대다. 나는 언어의 기원이 바로 여기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1992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신선하다. 진화론을 어렵게 느끼는 이들에게 친절한 설명서이자, 세이건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생명을 바라보게 해주는 안내서다. 나도 다시금 세이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모든 생명은 그 역사를 알게 되면 고귀해 보인다. 하물며 같은 종인 인간은 어떨까. 생명의 역사는 수십억 년에 이르지만, 한 인간의 삶은 수십 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개개인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고귀함을 지니고 있다.
세이건은 말한다.
“생의 아름다움은 그 일시성에 기인한다.”
“나방이 유리창을 향해 계속 돌진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다.”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존재는,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나 인간은 실수에서 배우고, 그 경험을 언어로 전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