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기를 넘어 환영하자.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 환경, 그리고 아이를 보는 새로운 시선
우리는 타고난다. 많은 것을 타고난다. 그래서 어쩌면 운이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믿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환경의 영향이 더 클 줄 알았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 두 딸을 키워 본 경험으로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데도 서로 다르게 자라는 딸들을 보며 환경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경험을 제공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오히려 아무것도 타고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의 유전자로 태어난다. 그래서 많은 것이 부모님을 닮는다. 외모뿐만 아니라 여러 성향과, 심지어 어떤 능력이 자라나기 쉬운 방향까지도 부모님을 닮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환경적인 영향이나 노력과 자유의지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태어난 이 소중한 자신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여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칼을 예로 들어 보자. 칼은 특정 용도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겠지만, 사용법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건 사용자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쩌면 어떤 능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어떤 능력은 조금 부족한 상태로 태어날 것이다. 그 뛰어난 능력을 어떻게 발견하고 살려 나갈지를 찾아내고 키워 나가는 것이 교육이며,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교육 자니까) 교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아이들의 장점을 찾아 그것을 키워 주는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교육은, 장점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거나 때로는 깎아내리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채워 주는 데 더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학생들을 한 방향으로 보게 하고, 하나의 종점(우리나라는 수능)을 향해 달려가는 교육을 한다. 즉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다행히 적성에 맞는 아이도 있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수능이라는 시험은 치지만 이후에는 공부와는 상관없는, 또는 배운 내용이나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곤 한다.
우리는 타고난다. 그 능력치를 완전히 다른 사람 수준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하지만, 자라면서 어느 정도 변화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다만 그 가능성을 키우고, 타고난 씨앗이 잘 자라도록 돕는 데에는 어릴 때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한다. 또한 어릴 때의 환경에 따라 그 뛰어난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마지막 11장 「유전자 너머의 세상」에서 전체 결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찾는다면 이 부분만이라도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에는 기억하고 싶은 문구가 많다.
경험은 선천적 차이를 상쇄하기보다 오히려 증폭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양육이 부모가 자녀의 행동에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성향에 영향을 미칠 만큼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 (그러니 다른 사람을 모두 존중해야 한다.)
집단 평균 차이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예측에는 매우 부적절하다.
(평균 키는 남자가 크지만, 이름만 알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키를 비교해 누가 더 큰지 말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11장 요약(이 책 전체의 요약이기도 하며, 좋은 문구가 많다.)
유전자와 심리적 특성 간의 관계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개인의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타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성격을 빚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자유의지가 있다. (뇌에서 제시하는 제한적인 선택지 내에서)
뇌는 변화와 더불어 일관된 자아 정체성과 구조를 유지할 필요성도 있다. 뇌가 끊임없이 변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 일 수 없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기를 넘어 환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