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농업 전공자가 배운 기다림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까지, 흙이 가르쳐준 인생의 속도

by haoinana

​대학 시절, 나의 손톱 밑은 늘 검은흙 때로 가득했다. 농업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식물을 기르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이 정해놓은 '절대적인 시간'에 순응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실험용 포트에 씨앗을 심고 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적당한 수분을 공급하고 온도를 맞춘 뒤에는,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성질 급한 동기 하나가 씨앗이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흙을 파헤쳤던 적이 있다. 그 씨앗은 결국 싹을 틔우지 못하고 썩어버렸다. 그때 교수는 말했다. "식물에게는 제각기의 속도가 있다. 인간의 조급함은 생명을 돕는 게 아니라 망칠 뿐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온실에 발을 들인 순간, 나는 그 귀한 가르침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렸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속도는 곧 생존이었다. 분기별 실적을 뽑아내고, 시장의 변화보다 한 발 앞선 전략을 수립하며, 남들보다 빨리 결과물을 내놓아야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제의 아이디어는 오늘 이미 구식이 되었고, 내일의 계획은 오늘 당장 실행되어야 했다.

​나의 일상은 늘 'ASAP(As Soon As Possible)'의 연속이었다. 이메일 답장은 5분 안에, 기획안 초안은 이틀 안에, 프로젝트의 성과는 한 달 안에. 흙의 속도가 아닌 광섬유의 속도로 살았다. 씨앗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고통의 시간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초록색 잎의 개수가 중요했다. 그렇게 10년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나는 뿌리 없이 덩굴만 무성하게 뻗어 나간 식물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맞이한 첫 월요일, 나는 습관처럼 노트북을 켜고 '오늘의 할 일'을 적으려다 멈췄다. 더 이상 나를 재촉하는 마감 기한도, 수시로 울려대는 메신저 알람도 없었다. 갑자기 주어진 무한한 시간 앞에서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10년 동안 단 한순간도 멈춰본 적 없는 엔진이 헛바퀴를 도는 기분이었다.


​그 막막함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린 건 베란다 한구석에 놓인 낡은 화분 하나였다. 이사를 준비하며 정리하려 했던, 마른 흙만 남은 화분. 나는 홀린 듯 그 화분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문득 대학 시절 전공 서적에서 보았던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종자 휴면(Seed Dormancy)'. 씨앗이 싹을 틔우기에 적절한 환경이 될 때까지 성장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가장 강렬한 생존을 위한 '기다림'이다.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나 역시 휴면기에 접어든 씨앗과 같았다. 10년간 소모되었던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동력을 모으는 시간. 하지만 사회의 속도에 길들여진 나는 이 귀중한 시간을 '도태'나 '정지'로 오해하고 있었다.

​농업학도가 배웠던 가장 위대한 진리는 '봄이 오기 전에는 결코 싹이 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비싼 비료를 주고 뜨거운 조명을 비춰도, 생명은 자신만의 리듬을 지킨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막막한 공백기는 인생이라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력(地力)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나는 다시 기다림을 공부하고 있다. 아침이면 길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녀석이 마음을 열고 다가올 때까지 거리를 두고 지켜본다. 억지로 만지려 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고양이에게도, 나에게도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누군가 자신의 인생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혹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조급해하고 있다면 감히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멈춘 것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싹을 틔우기 위해 흙 밑에서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인생의 속도는 타인의 시계가 아니라, 당신의 뿌리가 내리는 속도에 맞춰져야 한다. 흙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꽃을 피워낸다. 나 역시 이제야 그 순리를 믿으며,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발아를 묵묵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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