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꽤 깡다구 있는 취준생이었다.
여러 차례의 수능이 트라우마라도 되었는지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는 정말 공부하기가 싫었다. 3.5가 겨우 넘은 학점으로 아무 스펙 없이 일단 취업 시장에 나갔다. 부전공하느라 졸업시기가 늦춰지느니 차라리 일단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나가자는 판단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지만 당시에는 계속되는 서류 탈락이 내가 국사학과를 나왔음에도 경영 복수전공을 안 해서 인 것만 같았다. 다시 돌아가서 학위를 하나 더 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취준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가장 답답했던 건 서류 통과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의 면접에서 떨어졌던 얘기를 반면교사 삼을 수도, 면접 잘 보는 강의를 아무리 들어도 써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지 자소서에 구구절절이 써도 먹히지가 않았고, 경험이 없으면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남아도니 창의력이 생겨났다. 남는 시간에 맨날 영화만 보니 블로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평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건 너무 흔했고, 남들만큼 잘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관련 정보를 가장 빨리 올리는 블로그를 해보자, 하고 속도로 승부를 보겠다는 꽤 당돌한 저널리스트적인 생각을 해냈다.
당시에는 한참 마블 시리즈가 황금기를 맞고 있는 중이라 영화 블로그에서 마블만 전문으로 다루는 블로그가 꽤 많았다. 수요가 꽤 있겠지 싶어 소재를 마블로 정했다. 속도라는 차별성을 살리기 위해 해외 언론 매체들을 뒤졌다. 한국에는 ‘굳이’ 기사화되지 않은 정보들로 노다지였다. 다음 시리즈에 누가 나오는지 루머부터 해서 스태프들의 뒷 이야기 인터뷰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그 인터뷰를 하나하나 다 번역해서 블로그에 업로드했다. 당시엔 AI는 커녕 네이버 번역기가 전부라 단어를 하나하나 찾았다. (이 과정에서 영어 공부가 꽤 많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조회수는 무조건 내가 가져오겠지란 생각을 했다.
하루 조회수는 많아야 5-7 사이였다. 나는 SEO (당시 SEO 개념도 몰랐다.)를 무시한 글쓰기였고, 사람들은 인터뷰 원문에 관심이 없었다. 포스트 하나 만드는데 시간은 며칠이 걸리는데 결과가 미약하니 실망스러웠다. 이력서는 이력서대로 써야 했는데 이력서에 더 들어갈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블로그에서 제공하는 대시보드를 매일 봤다. 어떤 키워드로 유입이 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정리하고 대시보드에 나타는 숫자들을 있는 대로 긁어모았다.
(참고로 나는 매체가 아닌 일반인들도 콘텐츠 생산이 가능한 시대가 오면서 가장 좋은 이점 중에 하나로 ‘대시보드를 누구나 볼 수 있다 ‘를 꼽는다. 나를 정량화해서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잔인하지만 자본사회에선 도움이 된다. )
돌이켜보면 그 과정이 마케터 되기 101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화 된 교육이 아니었을 뿐. 전날 조회수 1이던 방문수가 다음날 50을 기록하면 50배 상승이었다. 포트폴리오랍시고 그런 내용들을 정리했다. 너무 창피했지만, 어치피 면접관들 이외에 보는 사람은 없었고 취업은 커녕 면접의 기회도 안 오니 이런 것이라도 철판 깔고 내밀어야 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고친 이후로 처음으로 면접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