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대 1을 뚫고 3년 만에 퇴사하기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임포스터 증후군이 찾아온다

by 아현

예상 읽기 시간: 6분


목차

1. 왜 저를 뽑으셨나요? - 어느순간 찾아온 임포스터 증후군

2. 여기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다고?

3. 제가 잘해왔다구요? - 퇴사 이후 칭찬 원칙 3가지를 세우다.


왜 저를 뽑으셨나요?

어느순간 찾아온 임포스터 증후군


PD를 하는 2년 내내 물경력이라 생각해서 스트레스였는데, 혈자리 뚫리듯 한 번 뚫리니 그다음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이런 우연이 있나'싶을 정도로 딱 나를 위한 공고가 나왔다. 어렵지 않게 1차 면접과 실무 면접을 보았고, 최종 임원 면접까지 통과했다. 전 국민이 아는 회사였고, 입사 자체가 큰 성과였지만 학창 시절과 20대를 오랜 자괴감과 함께 보내 관성이 된 탓인지 내가 잘 해낸 것이 아니라 '나를 뽑다니 이 회사도 이상한 곳인가?'라는 특이한 결론에 이르렀다.


경력 2년이 있었지만 신입으로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여러 부서에 인사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어떤 분께서 회사분들이 다들 내 얼굴을 궁금해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분 말에 의하면 내가 들어온 자리가 120대 1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분이 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었다.


그때부터 임포스터 증후군이 시작되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제치고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왜 저를 뽑으셨나요? (=경력이 2년이나 있지만 직무가 달라서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 착오였나요? 혹시 다른 면접자들이 면접을 다 포기했나요?)'라고 묻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면접 과정에서 혹시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금이라도 부족한 면을 지적 받으면 내 ‘진짜 실력’이 드러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커졌다.


나의 강점 파악과 자기 확신 없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성과는 그 마저도 왜곡해서 바라보게 되는 불상사가 이루어진다.


심지어 취업은 꼭 맞는 조각이 아니어도 들어가지면(?) 들어오게 하더라. 한 때 유행했던 'Square hole' 영상

지금에서야 취업은 1위 경쟁이 아니고 퍼즐 맞추듯 맞는 퍼즐을 찾아가는 행위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보다 뛰어난 스펙의 사람들을 제쳤다고 생각하니 뭔가 면접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고, 조금이라도 부족한 면을 지적받으면 내 '진짜 실력이 뽀록' 났다고 생각해서 점점 신경이 곤두서졌다.


첫 1년은 일을 배우느라 정신없었는데, 해가 갈수록 높은 긴장도에 몸이 점점 지쳐갔다. 이러한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짜 실력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강연도 들어보고, 퍼블리 같은 자기 계발 서비스도 이용해 봤지만, 다른 회사, 다른 사람의 팁을 내 환경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해가 갈 수록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는 하루 전체를 덮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업무를 곱씹었고, 심할 때는 스트레스로 인한 근육통이 심해 2번 이상 갈아타야하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웠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게 되고, 회사와 집과의 거리가 멀어 9시부터 시작되는 내 자유시간이 왠지 억울해지기 시작했고, 4시간 짜리의 부족한 수면이 반복되었다. 점점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기 돌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회사 밖에서의 '나'를 만들고 싶어 대학원에도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이 역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여기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다고?

여러 스트레스와 관련된 신체화 증상이 나타났고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결국, 만 3년이 되는 때에 처음으로 자발적 퇴사를 결심했다. 휴직을 잠시 고민했으나 휴직을 해도 새로 사람을 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고, 당시에는 오히려 휴직을 하는 것이 민폐라고 생각했다.


근속연수가 기본적으로 긴 회사였기 때문에 막내 직원이 3년 만에 나간다는 건 회사 내에서 꽤 이슈였다. 일부 분들은 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실 부모님조차도) 10년 차 이상 되는 분들은 내 퇴사 소식을 듣고 '여기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다고요?' 라며 이해를 못 하는 분도 있었고, 그중에 한 분은 '여기 나가면 비정규직만 전전할 것이니 남으라' 며 당황스러운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이후로 비정규직을 전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회사에서 최종 오퍼레터를 받았고, 그중 약 천만원 정도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한 IT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이직했다.



제가 잘해왔다구요?

퇴사 이후 칭찬 원칙 3가지를 세우다.


나는 그 만 3년여의 시간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고,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는 느낌이 컸다. 내가 일을 못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퇴사 통보와 그 이후, 여러 곳에서 들려오는 평가를 종합해 보니 내가 꽤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도, 노력과 성과는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인정과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였고, 나는 아래와 같은 원칙을 갖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1. 관찰하기

- 회의, 프로젝트, 일상 대화, 심지어는 점심 이후 하던 보드게임의 순간 속에서 동료가 한 작은 성취나 노력을 캐치하기 위해 많은 관찰을 했다.


2. 즉각적인 칭찬을 습관화하기

- 관찰로 알게된 상대의 칭찬거리는 될 수 있으면 가장 빠르게 내 안에서 배출하여 상대가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상대가 언제 퇴사할지 모른다!)


3. 상대에게서 칭찬 받으려 하지 않기

-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끊임없는 인정욕구를 자극하는 일들이라, 자칫하면 일에 집중하기 보다 '칭찬을 받기 위해' 행동하게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방심하면 나타난다. 이 원칙 중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원칙이었고 최근까지도 종종 어겼던 적이 있지만, 확실한건 1,2를 습관화하면 자연스레 신임을 얻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동료와 협업이 더 수월해진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미리 닦아 놓은 길이나, 정해진 길만 가던 내게 첫 자발적인 퇴사는 내 인생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지난 9년 커리어의 후반전에 해당하는 다음 편에는 스타트업·외국계 회사를 다니며 어떤 성장을 했는지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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