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정답이라던 어른들은 왜 퇴사를 했었을까?
"너도 너 같은 자식 낳아봐야 알지."
이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보통 부모와 자식이 다투고, 감정이 고조된 끝에 나오는 대사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쩌면 보편적인 진리인지도 모른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아직 자식을 낳아보지 않아 저 말을 완전히 헤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조금은 저 말의 뜻을 알 것도 같다. 몇 번의 이직과 직무 변경을 거치며 늘 막내이거나 ‘중고 신입’ 일 것만 같았던 나도 어느덧 매니저가 되었고, 그 말인즉슨 관리해야 할 팀원들도 생겼다. 팀원들을 매니징 할 때마다, 신입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과거의 나의 행동을 빌어 이해가 되는 동시에 나를 가르쳐주던 선배들의 노고와 마음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사실 나는 내 후배들에게 ‘라떼는 말이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게 ‘라떼’ 시절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신입들보다 더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신입이었을 때는 선배들 사이에서 "90년 대생들이 온다"며 우리 세대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몇 년 새 ‘MZ짓’이라는 말로 신입들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운 좋게 시기를 비껴 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운 좋게 시기를 비껴나간 사람으로서 사실 나는 '더' 했다고 고백을 하여 미약하나마 그들의 편을 들고자 한다. 내가 왜 소위 'MZ스러운(?)' 신입이었는지 이야기하려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취준생’이던 시절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대학 시절을 회상해 보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남들 다 가는 한 번에 대학을 가지 못해 N수를 했다. 겨우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 도저히 모르겠었다. 나보다 먼저 대학 생활을 한 동갑내기 친구들의 조언이 모두 달랐다. 공통적으로 교환학생은 추천하길래 교환학생만 한 학기 겨우 갔다 왔다. 남들 다 하는 공무원 준비는 하기 싫었다. (공무원이라서가 아니라 N수 생활하면서 시험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렇게 어영부영 4학년이 되었고, 스펙도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왠지 ‘취업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교내 경력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특별 취업준비반에 들어갔다.
대기업 출신의 강사와 이미지 메이킹 강사의 세션으로 이루어진 강의를 정기적으로 들으며 그들이 알려주는 ‘취업 가능한 인재상’에 맞는 연습을 해야 했다. 사실 회사마다, 직군마다, 포지션마다 원하는 것이 다른데 그때는 그저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따라야 했다. 일종의 믿음이 없으면 세션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 강의가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수업을 잘 따라가고 가장 소화를 잘한 한 남학생은 머지않아 취업 소식을 들려주곤 했다.
그와 달리 난 그 세션들을 늘 의문을 가진 채로 참석했다. 당시 내가 가진 의문은 이미 한국 사회의 어른들에게 한 번 속았다는 배신감에서 비롯되었다. 분명 어른들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했다. N수를 해서 겨우 대학에 갔더니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단어만 바뀌어선 취업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취업, 입사, 취업, 입사… 반복되는 단어 속에 머리가 아팠다. 세션을 듣던 중 강사 분들의 이력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퇴사’
그분들은 회사 생활을 하다가 퇴사 후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는 분들이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 취업이 한국 사회의 만병통치라면, 그들은 왜 퇴사를 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뭐, 이런 생각이 드니 수업을 듣는 것이 잘될 리가 없었다. 머릿속은 그런 의문으로 가득인데 자리에 일어서서 소리 내며 '힘차게 자기소개하는 법' 같은 걸 배우고 있자니 죽을 맛이었다. 취업이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주입되는 느낌이었다. 그게 ‘정도’고 ‘정답’이라면 실례지만 왜 그 '정답'에서 나오셨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 와중에 '좋은 인상을 위해 여자는 레드 립스틱을 발라야 한다’는 내용도 귀에 들려오고 하니 내 표정은 더더욱 굳어갔다. 결국에 선생님께서는 '학생은 집에 무슨 일이 있냐' 고도하셨고, 결국엔 그냥 나를 문제아 정도로 두고 무시하고 수업을 진행하신 것 같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하기 싫어도 적당히 분위기에 맞출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까지 반항적이었을까 싶다. 하지만 취업이 정도인 것처럼 주입한다는 대학과 사회의 태도에 대한 시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들 ‘MZ’ 거리며 패러디를 하고, 밈(Meme)화하긴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리고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들은 늘 ‘보고 따라 하고 싶은’, ‘배우고 싶은’ 어른을 찾는다. 요즘 세대는 좀 더 진정성 있게, 진심으로 따라 배우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는 점이다. 내 글을 읽으며 과거의 나처럼 쉽게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내가 하고 싶은 항변은 하나다. 주위에 보고 배울만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닐까요?
매우 부적응자처럼 보일까 봐 걱정되지만, 의외로 나는 취업도 하고 잘 살고 있다. 물론 취업을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았다. 사회는 여전히 내 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고, 입사 후에도 적응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면, 내 환영 회식이라더니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주먹다짐을 벌이는 걸 보며 집에 와서 사회의 모습에 너무 실망해서 한참을 울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해보도록 하겠다.) 그런 혼란의 신입 시기를 지나서 지금 만약 누군가 내게 "학교가 좋냐, 회사가 좋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회사"라고 답할 것이다. 회사에서는 마음이 다칠 일도 많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내’ 경험이고 ‘내’ 상처라는 점이 중요하다. 대학시절, 사회초년생까지는 사회의 피니쉬라인에 도달하기 위해 허둥지둥 따라가느라 '나'의 고민이, '나'의 경험이 없었다.
신입 시절에는 사회가 기대와 다르다고 불만이 많았지만, 이제는 내가 기대에 부응하는 선배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기가 되었다. 나는 후배를 포함한 동료들에게 '진정으로' 믿고 따를 만한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세월은 문제아도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