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숨을 쉬고 싶었던 아이

Episode 27

by 현서린

차별사건 이후, 너는 한동안 마음을 어디에도 두지 못했다.

학교라는 공간은 여전히 조용한 차별의 기류로 가득했고, 교실의 공기마저 어딘가 눅눅하게 느껴졌다.

너에게는 숨 쉴 구멍이 하나가 필요했다. 그래서 합창부에 들어갔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노래라는 방식으로라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합창부 첫날, 너는 개인 오디션을 통해 알토 파트에 배정되었다.

오디션 중에 합창부 담당 음악선생님은 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썹을 올렸다.

“음… 음색이 독특하네. 노래는 잘하는데, 여학생치고 음역이 굉장히 낮다. 합을 맞출 수 있겠니?”

그 말은 칭찬도, 비난도 아닌 어딘가 굴절된 평가였다.
합창은 개인이 아닌 ‘전체의 조화’를 말하는데, 너의 목소리는 홀로 튀어올라 조화를 깨뜨리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합창제를 나갈때면 리허설 때마다 아이들은 속삭였다.

“진짜 변성기 잘못 온 거 아니야?”
“얘 남자 목소리 같아. 솔로는 듣기에 좋은데, 우리랑 어우러지질 않네.”
“저 목소리 때문에 우리 합창대회에서 팀 점수 깎이면 어떡해.”

그 말들은 장난처럼 툭툭 던져졌지만, 너의 가슴 한쪽에는 깊이 박혀 오래도록 쑤셨다.

그런 혼란 속에서 너는 합창부에서 연지를 다시 만났다. 중학교 시절 마음을 터 놓았던 단짝이라 부를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 연지.
가수 이상은을 좋아해 함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아이. 연지는 여전히 조용했고, 말투는 단정했으며, 너를 보자마자 살짝 눈을 크게 뜨며 웃었다.

“영서야? 너 합창부야? 와… 너무 반갑다. 나 합창부에서 오늘부터 반주를 하게 되었어. ”

그 말은 그날 너에게 들린 가장 따뜻한 음성이었다. 연지는 네 목소리를 듣고도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 낮은 게 뭐 어때? 멋있기만 한데.”

그 말은 칭찬이라기보다는, 너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투명한 시선이었다.
너는 그 순간, 합창부의 공기가 잠시 부드러워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연지도 너의 방패가 되어줄 수는 없었다.

합창이라는 구조 안에서, 너의 음색은 계속해서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되었다. 그래도 연지의 존재는 너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잠시나마 버틸 힘을 만들어주는 작은 등불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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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중요한 공연을 앞둔 최종 리허설에서 지휘 선생님은 조용히 너를 불렀다.

“영서야… 오늘은 입 모양만 맞춰주자. 너무 튀어서 전체가 흔들려.”

순간, 너는 귀가 먹먹해졌다. 당황스러움보다 깊은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노래가 아니라 침묵을 요구받는 자리. 공연복을 맞춰 입고도,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자리.

그 장면은 너에게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너는 그저 “네…” 하고 돌아섰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눈물이 시야를 번지게 했다.

그래도 너는 노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합창부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노래는 여전히 네가 숨을 쉬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래서 너는 합창부를 나와 중창단을 만들었다. 합창부에서 함께 나오게 된 아이 둘, 그리고 너.
세 명은 점심시간마다 빈 교실에 모여 노래를 맞췄다. 누군가의 박수를 받을 필요도, 심사위원의 점수를 신경쓸 필요도 없었다. 음이 조금 흔들려도 괜찮았다.
세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심스레 만나 하모니를 만들던 순간— 너는 오랜만에
“아, 나 지금 숨 쉬고 있다.”
라는 감각을 되찾았다. 중창단으로 대회에 참가해 작은 상도 받았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숨통은 길지 않았다. 선생님과의 거리, 친구들의 시선, 학교 안의 계급적 공기… 이 모든 것이 너를 다시 지치게 했다.

그때, 너는 미술반에 입단했다. 너의 목소리를 평가하지 않는 곳.
말 대신 선 하나로 마음을 그릴 수 있는 곳. 그림 앞에서는 누구도 너에게 조용하라고, 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미술실은 오래된 건물의 맨 끝에 있었는데, 창문 너머로 늘 석양이 쏟아지는 방이었다.

아이들 사이에는 괴담 하나가 떠돌았다.

“저 초상화, 밤 되면 눈 감는다.”
“저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꿈에 귀신이 나온대.”

미술실 한켠에 걸린 오래된 여학생의 초상화는 어쩐지 깊은 슬픔을 품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서워했지만, 너는 그 그림 앞에 자주 서 있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들킨 듯한 느낌.

괴담이라기보다는, 그림이 조용히 네 속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

때로는 그 그림이 마치 너 자신같다는 느낌에 자주 그 앞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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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부에서 지워진 목소리, 도덕 선생님에게 무시당했던 감정, 엄마에게 말할 수 없었던 짐들.

그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너는 그 앞에서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은 아이처럼 편안했다.

그 시절 너는 노래로 숨을 쉬고 싶어 했고, 그 숨이 자꾸 막혀왔다.
하지만 미술실에서 다시 알게 되었다. 사람은 때때로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서 상처를 받고,

새로운 공간에서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을. 그리고 너는 반복적으로 게속 깨닫고 있었다.

노래가 아니어도, 합창부가 아니어도, 너의 표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소리가 막히면 그림으로, 그림이 막히면 글로, 글이 막히면 다시 또 다른 길로—
너는 언제든 또 다른 숨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너는 조용히, 그리고 아주 단단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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