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시계는 다른 시간을 산다

Episode 28

by 현서린

고등학교에 진학 한 후, 너는 엄마의 도시락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도시락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또렷하지 않다. 그 시절엔 급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집에서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으면 교내 매점을 이용했었다.

도시락은 자주 없었다. 그건 서운함이라기보다는, 늘 그랬다는 사실에 가까웠다.

엄마는 아침마다 먼저 일어나 있었다. 엄마 방에 불은 켜져 있었지만, 그 불빛은 너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책 위에 고개를 숙인 채, 엄마는 늘 무언가를 쓰면서 외우고 있었고, 그 시간은 이미 너의 하루와는 다른 궤도를 돌고 있었다. 다정했지만, 범접할 수 없었다.

너는 스스로 밥을 챙겼고, 도시락이 없으면 지갑을 확인했고, 매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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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택들에는 억울함보다 익숙함이 먼저였다. 엄마는 너의 아르바이트 사정을 몰랐다.

그 시절엔 근로계약서 같은 건 없었고, 통장만 있으면 일은 시작되었다.

인간성 좋은 사장님을 만나면 정해진 시급외에 현금 보너스를 받기도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방과 후에 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다른 명찰을 달고 서 있던 너를 엄마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네가 얼마를 벌었는지도, 그 돈으로 무엇을 사고 무엇을 견뎠는지도 말하지 않았고, 묻지 않았다.

신경쓰이게 해 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너는 부잣집 딸은 아니었지만, 주머니는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더 두툼했다.

용돈 때문이 아니라, 네가 직접 벌어온 너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집 앞의 그당시 있던 외환은행에서는 선물도 많이 받았다. 매일매일 은행에 출근하듯 직접 찾아가 저금을 했고, 그때는 은행이 토요일도 운영을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6일을 학교가 끝나면 은행으로 달려가곤 했던 너였다.

차곡차곡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을 보는 것이 꽤 큰 즐거움이기도 했는지, 그래서 은행에서 주는 저금상을 꽤 여러번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때로는 돼지 저금통으로, 때로는 학용품으로, 때로는 간식꾸러미로...언젠가 은행에서 마주친 어떤 아저씨에게 너는 얼굴이 낯이 익어 "안녕하세요" 큰소리로 인사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아는 아저씨가 아니라 탈렌트 정한용 아저씨였다고 한다.

같은 동네 살고 계셨던가. 그런데 두번은 마주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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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들에 비해 그래서 너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몇 시에 들어오든, 누구와 어울리든 엄마는 묻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너는 잘할 거라고 믿어.”

그 말에는 조건이 없었고, 감시도 없었고, 대신 책임이 따라붙어 있었다.

그래서 너는 자유로웠고, 그 자유만큼 스스로에게 엄격해졌다.
누구도 너를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네 삶을 직접 관리해야 했다.
늦지 않기 위해 더 빨리 움직였고,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더 조용해졌다.

엄마는 늘 바빴다. 공부를 했고, 일을 했고, 결국 늦은 나이에 신학대학에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사역을 하기 위해 교회로 향했다.
너는 엄마의 일정표를 외우지는 않았지만, 그 리듬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엄마는 아마도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은 네가 무너질 틈을 찾는 시간과는 겹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너는 힘들 때도 말하지 않았고, 괜찮을 때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엄마의 삶이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너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존경했다.
자기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사시는 분이라는 걸.

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엄마와 너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았다.

영서엄마의 시계는 앞으로 가고 있었고, 너의 시계는 숨이 막히지 않는 속도를 찾아 천천히 가고 있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너는 점점 혼자 자라는 쪽을 선택했다.

그건 슬픔이라기보다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렇게 너는 누구의 딸이기 전에 스스로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엄마와는 다른 시간을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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