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여섯 살이던 그 시절, 네가 살던 집은 산동네 꼭대기 근처였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흙먼지가 이는 계단길, 다닥다닥 붙은 기와집과 슬레이트 지붕은 너의 작은 세상을 가득 채웠다.
낮은 담벼락을 타넘으며 뛰어놀고, 비탈길을 달려 내려오던 그 순간들은 너를 매일 모험 속으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너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동네 놀이터의 낡은 그네였다. 쇠사슬은 삐걱거렸고, 나무판자는 햇빛을 받아 색이 바랬지만, 네게는 그 어느 놀이기구보다도 짜릿했다. 발끝이 하늘을 스칠 듯 올라갈 때마다 너는 바람과 친구가 되었고, 새와 함께 나는 듯한 자유를 맛보았다.
유치원이 끝나면 곧장 달려가, 해가 저물 때까지 그네를 타고 또 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른 낯선 분위기가 놀이터에 감돌았다. 멀리서 나타난 스님 한 분이 맑은 햇빛을 머금은 듯한 부드러운 미소로 너에게 다가왔다. 회색빛에 반들거리는 고운 옷을 입고 머리는 반질반질하게 깎은 그 스님은 정말 낯설었지만, 겁이 없는 너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스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그네 밀어줄까?” 그 순간, 너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 너 대신 그네를 밀어준다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솟아났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몇 번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이내 스님의 손길은 예상보다 훨씬 거세졌다. 그네는 마치 하늘을 찢듯 솟구쳤고, 네 심장은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었다. 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리며 귓가를 울렸다.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지만, 결국 균형을 잃은 몸은 허공을 가르며 내던져졌다.
쿵! 땅에 떨어진 순간, 눈앞이 아찔하게 흔들리고, 온몸이 덜컥 굳어버렸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스님은 당황한 얼굴로 다가와 “괜찮니?” 하며 등을 두드렸지만,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웃들이 몰려와 너를 부축했고, 곧바로 어머니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핸드폰 하나 없던 시절, 동네 사람들은 서로의 아이를 가족처럼 챙겼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뛰어와 너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날 이후 누군가 그네를 밀어주겠다는 말이 나오면 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 혼자 탈래요!” 초조한 마음에 말을 빠르게 내뱉곤 했었지.
그네 사건이 네 마음을 꽤 크게 흔들어 놓았지만, 모험심까지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사건 이후로 더 아찔하고 위험한 일들이 너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놀이터 가장자리에서 삐걱거리는 나무 구조물을 아슬아슬하게 걷기도 했고, 덩치가 작은 아이들은 엄두도 못 낼 만큼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보기도 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네 모습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고, 거꾸로 매달린 채로 장난치다가 친구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 순간 너는 세상을 정복한 작은 영웅처럼 느껴졌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산동네의 가파른 경사에서였다. 땅따먹기를 하며 장난치던 중, 발이 미끄러져 절벽 같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바위에 머리를 부딪친 순간,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친구들은 놀라 울먹이며 너에게 달려왔고, 너는 어지러운 정신 속에서도 엉뚱하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피투성이가 된 스스로가 어쩐지 ‘모험가의 훈장’을 얻은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 순간을 단번에 현실로 끌어내렸다.
“영서야! 병원에 가야 해!”
네가 울음을 터뜨린 건 그제서야였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모험을 꿈꾸고 있었다. 그때 오히려 피가 외부로 터졌기 망정이지 오히려 피가 나지 않았다면 뇌출혈을 일으켜서 큰일이 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니 정말 못말리는 채영서였다.
너는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라 금방 눈에 띄었고, 행동은 사내아이처럼 거칠어 동네 어른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네 천방지축인 모습에 혀를 끌끌 찼지만, 정작 네가 작은 상처라도 입으면 금세 눈물이 터져 나오는 순진한 아이였다는 건 잘 몰랐다. 무릎이 까져 피가 날 때면 억지로 울음을 참아보려 했지만,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훌쩍거렸다. 때로는 동생이 너를 따라 하다 다칠까 봐 겁이 나서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코를 훌쩍이며 비가 오던 날은 감기에 걸리니 어머니가 절대 먹지 말라는 하드 '깐돌이'를 먹을 때도,
"집의 아이 저기 남의 집 처마밑에서 코 흘리며 하드 먹고 있드라" 라며 주변 동네 사람들은 다 일러버렸는데도 안 먹은 척 능청떠는 영서 너의 모습은 개구장이 그 자체였었다.
어린 너는 어설프게 용감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여리고 순수했다. 낯선 모험과 아슬아슬한 위험이 가득한 그 시절, 어른들이 가르쳐 주지 않는 세상의 이치를 몸으로 배우며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던 거다.
그렇게 산동네를 네 작은 왕국 삼아, 너는 스펙터클한 모험을 펼치며 너만의 삶을 조금씩 배워 나갔던 거다.
살다보니, 작은 네가 어느새... 못말리는 말괄량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