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던 그사람의 조각을 가지다.
지난해 이맘때 퇴근 후에 뭐 하냐는 후배의 질문에 수영을 배울까 고민한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도 한참을 고민만 하다가 올해 2월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수영 수업을 신청했다.
그전부터 수영을 배워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나를 행동하게 만든 것은 바로 헤어진 남자친구였다. 퇴근 후에 수영하는 그의 일상이 좋아 보였다. 수영이 너무 재밌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재밌길래 저렇게 좋아할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던 그의 모습을 내가 하게 된다면 그와 만남은 끝이 났어도 만남을 통해 한가지 배운 것일 거라, 그렇게 생각하고 수영을 시작하게 됐다.
이유가 어찌 됐든 등록을 하고 나니 마치 새 학기에 반 배정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두려움과 설렘의 감정이 찾아왔다. 사실 그동안 물공포증 때문에 물놀이는커녕 잠수도 못 하는 나였기에, 수영을 한다는 것은 3n년 인생에 손에 꼽히는 도전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로움이라는 것을 느낄 새가 거의 없었는데 이런 기분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이제는 인사발령이 나더라도 어차피 일은 다 같은 일 아니냐며 무덤덤하기만 했는데 새로운 환경에 간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구나,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수영을 가기 전에 수영 초보라는 검색어로 유튜브와 블로그를 검색해서 수영장 매너에 대해 공부했다. 수영장 매너란 입수 전에 머리를 감고, 양치하고, 비누 샤워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인터넷에서 배운 대로 하고 들어가서 유아풀에서 음파-음파- 연습을 시작했다. (사실상 어감이 별로긴 해도 흥헙-이란 호흡법이 더 맞는 것 같다.) 킥판을 잡고 도시락까지 찬 내 모습이 웃기긴 했지만 일단 물에 뜨는 것부터 연습해야 하니 별다른 수가 없었다. 음파-음파- 2번만 하고도 숨이 차서 금방 멈춰 서는 게 전부고 어떤 날은 물을 엄청나게 먹기만 했는데도 재밌었다. (수영을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영장 물을 다 마셔야 수영을 제대로 배운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수영을 하는구나, 그렇게 배운 게 어느덧 8개월이 되었다.
물에 뜨지도 못하고 잠수도 못하던 내가 이제는 어설프게나마 한 팔 접영을 하고 있다. 평일 월수금반을 수강 중인데 이렇게 주 3회, 8개월이란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느리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나는 나아가고 있다. 이제 내 곁에 그 사람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던 그의 조각을 스스로 가지게 됐다. 항상 이리저리 주변 상황에 치이고 흔들리는 내면을 가진 내가 싫었는데, 수영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전보단 조금 더 단단해짐을 느낀다. 생각해 보니 삶이 물 속이라면 주변 물살에 흔들리고 치이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물만 먹다가 끝나는 게 아니라, 잠수도 해보고 헤엄도 쳐보고 균형도 잡을 줄 알아야 하는데 어쩌면 나는 수영을 배우면서 인생의 태도도 함께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접영이 미숙해서 한참 더 배워야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다. 시간을 쏟으며 성실히 임하면 언젠가는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