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쉼표 그 사이에서,
LA 여행 계획을 짜면서 이전 여행들을 떠올려 보았다. 돌아보면 20대에는 세계여행을 꿈꿀 정도로 전 세계에 호기심이 넘쳤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받아들이고 일찍이 취업을 선택하면서 세계여행은 아니더라도 1년에 한 번은 꼭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스스로와 타협했고, 매년 여행을 하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곤 했다.
그런데 어느샌가 나는 변했다. 더 이상 여행에 큰 흥미가 있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변한 걸까? 이전에 꿈꿨던 것이 사실은 내 꿈이 아니었던 걸까? 요즘 여러 카테고리에서 나의 양면적 모습을 마주하며 자주 혼란스러웠다.
스무 살, 성인이 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었다. 해외를 가 본 적이 없었기에 막연하게 '해외'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갖고 싶다는 욕망 그 사이에 무언가 마음속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설레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국내여행을 시작으로 매 년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막연한 동경을 실제 경험으로 실현했고, 그 순간이 그 해의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되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여행은 늘 많은 깨달음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TOP 3 여행을 고르자면, 처음 떠났던 내일로 전국 여행과 LA 한달살이, 유럽 혼자 여행을 꼽을 것이다.
해외여행을 꿈꾸면서 가장 먼저 한 여행은 국내여행이었다. 그 당시 온라인에서 어떤 사람이 “국내도 모르면서 무슨 해외냐”라며 해외여행을 비판하는 글을 읽었는데, 그 내용에 공감하여 국내여행을 먼저 하기로 했다. '내일로'는 청년들 대상 일주일간 무제한 기차를 탈 수 있는 티켓으로 전국 여행을 하기에 최적이었다. 21살 여름방학 때 인터넷 카페에서 일정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서 5-6명이 함께 여행했다. 서울을 시작으로 강원도를 거쳐 경상도를 쭉 내려가면서 국내 여러 지역들을 여행하고 그 지역에 유명한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지역 음식들도 먹었다. 언니 오빠들과 정말 재미있게 여행하고 서울역에 딱 도착했는데, 서울스퀘어 건물에서 나오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모두가 “아, 서울이 가장 예쁘네!”라며 웃었다.
이 여행은 그 후 여행을 가는데 가장 기반이 된 경험이었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여행을 통해 돈독해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즐거움을 그때 처음 접하면서 여행의 매력에 폭 빠져버렸다.
23살에는 다니던 대학교에서 주최한 미국 여름 계절학기 프로그램에 뽑혀서 한 달간 LA에서 수업을 듣고 곳곳을 여행했다. 미국에서 하는 모든 경험은 기존 한국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인식을 깨트리고 더 유연한 사고를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당시 하루종일 영어공부에 집중하여 한 달 만에 토익 점수를 600점대에서 900점대로 올린 후라 영어에 대한 관심이 엄청날 때였다. 한정된 시간 동안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하고자 곳곳을 돌아다녔고 그 사이에 영어를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괜히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그때 함께했던 같은 조 사람들은 모두 적극적이고 해외경험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만날 때마다 내가 인생을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는데 큰 귀감이 되곤 했다.
25살에는 최종 입사 합격 통지를 받은 후 무작정 유럽행 티켓부터 예매했다. 이전처럼 여행메이트를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없던 나는 스스로 여행을 무탈히 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여행 날짜가 다가오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여행 당일의 해가 밝았다.
여행 첫날 스탑오버로 늦은 밤 도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는데,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라멘집에서 음식이 나오자마자 10분 뒤 마감이라며 빨리 먹고 나가라는 식의 태도에 당황하고 돈키호테에서 일본 변태까지 만나면서 문득 외로움이 밀려왔다. 도쿄타워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이대로 혼자 여행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간 유럽여행은 내 생에 정말 잊지 못할 기억들을 안겨주었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한국인은 모두 오랜 친구처럼 반가웠다. 런던에서는 아일랜드에서 놀러 온 언니와 친해졌고, 파리에서는 한인민박에 체크인하는 첫날 함께 들어온 학교 후배가 있어서 그 친구와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으며 그 밖에도 우연히 가는 길이 같은 여정동안 이야기를 나눈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모르는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이 감사함을 세상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처음 런던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앉은 영국 아주머니께서 '짐을 꼭 잡고 있으세요 누군가 훔쳐갈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보여줘서 소매치기로부터 짐을 지킬 수 있었고, 런던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배 안에서 잠이 들어 국제미아가 될 뻔했는데 어떤 한국 분이 깨워주어 무사히 파리에 도착했으며, 파리에서 이탈리아에 새벽비행기로 넘어가기 위해 밤에 공항을 가는 도중 갈아타는 지하철이 파업으로 일찍 문을 닫아 당황하던 찰나에 한 프랑스 가족이 몇 정거장 더 가면 본인들의 차가 있다면서 그 차로 나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그 기억들은 모두 소중하고 감사한 기억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그 망망대해에서 스스로 하루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고, 그 사이에 마주하는 많은 이벤트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자신감이 생긴 것은 가장 큰 자산이었다.
돌아보니 학생 때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순간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한 다양한 새로움을 마주하면서 나의 박스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 여행의 유용함을 인정했다.
일을 하면서는 일상이 모험이었기 때문에 여행의 목적은 주로 그로부터 해방되어 온전히 쉬고 싶거나 큰 일을 마친 후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개념 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추억 여행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여행의 의미는 일과 일 사이의 쉼표정도로 서서히 변해갔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여행을 떠나서 여행하는 기간 동안 가능한 많은 휴식을 한 뒤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밀린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으니 말이다. 여전히도 여행을 좋아했지만 예전처럼 여행을 통해 큰 무언가 변화가 생기는 것은 없었고, 그러기를 원치도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조금씩 작아졌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 여행의 의미를 먼저 돌아봤다.
우선, 미국에 사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다. 친구가 비자를 받는 동안 겪은 어려움부터 알고 있기에 실제로 미국으로 가고 그곳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해 초대를 해줬다는 게 기쁜 한 편, 낯선 땅에서 외로이 지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앞전에 이야기했듯이 LA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사이에 최대한 그 변화를 느끼고 오고 싶다.
세 번째로는 나 홀로 여행이다. 첫 이틀을 홀로 여행하는데, 유럽여행 이후 자그마치 10년 만이다. 10년 전 나는 돈을 아끼려고 하루 4만보씩 걸으며 6인실 호스텔에 묵었고 혼자가 익숙지 않아 한국인만 만나면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었으며 낯선 상황에서 마주하는 모든 변수에 긴장하던 나약한 아이였다. 반면에 지금의 나는 직접 운전을 하고 호텔에 묵으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고 새로운 곳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겼다. 여전히 약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과거와 비교해 보니 꽤 성장한 것을 느꼈고 바르게 자라준 스스로가 대견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하나 신기했던 건 이 여행이 최근 여행을 통해 흔히 느꼈던 감정보다는, 이십 대에 느꼈던 설렘 유사한 감정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 감정은 나를 꼭 20대에 꿈이 많고 반짝이던 아이로 돌려놓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내가 좋아하던, 그러나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과거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분이 한 껏 들떴다. 그렇게 그 모습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서 어쩌면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단지 상황이 변해서 그 상황에 적응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때 루틴하고 익숙한 상황에서 여행을 통해 새로움을 찾고, 일을 통해 늘 모험을 하는 상황 속에서 여행을 통해 숨통을 틔우는 시간을 갖는 거, 어쩌면 그 상황에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는 지금의 나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아주 탄탄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이제는 이전에 세계여행을 꿈꾸던 아이도, 여행에 큰 흥미가 생기지 않던 최근의 나도 그냥 그 시절, 그 상황 속에 존재하는 나로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