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 속의 첫 커피는 아버지가 어디선가 가져오신 미제 원두커피예요. 후에 생각하니 그게 제너럴 일렉트로닉 사의 퍼콜레이터였던 것 같은데요. 투명한 꼭지가 달린 스텐전기주전자도 함께였죠. 처음 사 오신 날, 이 신기한 물건이 뭘 하는걸까 싶어 무릎꿇어 맞대고 옹기종기 동생들이랑 머리를 디밀던 생각이 나요. 아버진 연신 영어로 쓰인 설명서를 소리내 읽으시고 한 손으론 부속품을 이리저리 돌려보시고... 엄마는 행여 손이 탈라 우리 셋의 손가락을 막아내고 계셨죠.
물을 붓고, 긴 젓가락같이 가는 다리 위에 달린 구멍난 통에 커피가루를 넣으시고 주전자 뚜껑을 닫고 전기를 꼿았죠. 한참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고장인가... 다시 아버진 설명서를 펼 무렵 투명한 꼭지로 물이 끓어 오르는게 보였어요. 와...! 하는 탄성과 함께 조금씩 피어오르는 커 피향... 뚜껑꼭지로 솟아올렀다 내려가는 물빛이 점점 짙어지는 가는 게 보였어요. 방안은 온통 향긋한 향으로 가득 찼죠. 어린 제겐 진짜 멋있어 보였어요. 그렇게 커피는 제게 어린시절 좋은 장면으로 시작해요. 어쩜 아직까지 커피가 이리 좋은 이유도 그 기억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따듯함, 신기함, 들뜬 마음, 온 몸을 감싸던 터질듯한 향...가족의 웃음핀 얼굴들... ...그 그리움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