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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미니 Feb 24. 2024

엄마를 알아가기

1. 엄마와 마지막 전화

"그래,  나도 그랬으니까... 이해해"

며칠전에 보고온 엄마가 나에게 가볍게 그러나 묵직하게 뱉었던 혼잣말.

전화 너머 엄마가 또 우리가 너무 보고싶다고 성화였다. 한편으론 안타깝고 한편으론 얼마 안됐는데 왜그러시나 싶었다. 최근들어 부쩍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신다. 전엔 부담될까 감추시던 맘을. 난 최대한 엄마의 어리광에 답을 했다. 내 속마음을 감추고.

"엄마 나도 이해해. 이제 다컸다고 엄마 손주들도 집에 오자마자 다녀왔습니다 말과 동시에 방으로 콕 들어가. 집에 같이 있어도 보고싶다니까!"

"아냐, 너희 아빠랑 말했지 이건 팔십은 넘어봐야 아는 마음이라고. 난 요즘 자식들과 가까이 사는 사람이 젤 부러워. 너희가 너무 보고싶어.  음... 그런데 이해해. 나도 그랬으니까"

짧은 한숨, 그러고는 언제나처럼 깔깔 무안한듯 웃으신다.


엄마는 삼일전 육천보를 걸으시고 무리였는지 힘들다 하셨다.  코로나 삼년차, 엄마는 부쩍 조그매지시고 팔다리가 마르셨다. 몸통만 남은 사람처럼 동그라미가 되어 갔다. 석달전 엄마랑 강릉여행을 가보고 알았다. 엄마의 육천보는 옆으로 기우뚱기우뚱 하는 걸음때문이지 사실 이천보도 못 넘기실거란걸. 폐도 이미 삼분의 일이 석회화가 진행되었다는 엄마는 코로나를 무척 두려워하셨다. 94 마스크를 끼고는 숨을 제대로 쉬실수가 없어 80 마스크를 씌워드렸다. 다행히 주사 네번을 무사히 마치셨고 코로나를 무사히 피하고 계셨다. 하지만 사람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외출도 맘대로 못하고 종일 아빠와 단둘이 티비만 바라보고 사는 시간을 힘들어하셨다. 많이 외로워하시고 사람에너지를 못받아서인지 우울해하셨다.

언젠가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세대한테는 참 세상이 너무해. 일제치하에서 태어나 6.25 를 지독히 겪고, 굶어가며 도망다니며 겨우겨우 살아냈더니 이제 죽을때가 되어 다시 코로나가 웬말이니? 우리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남았다고 자식도  마음껏 못보고 숨어있다 귀한 시간을 버리다니"


동생들이랑 나, 우리 세자매는 이 코로나 환란 속에서 엄마 아빠 지키기에 정말 죽을 힘을 다했다. 마스크 랑 소독제가 동이 났을땐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금액에 중국제마스크까지 구해 보내드리고, 마스크 아껴서 재사용할 것이 뻔한 부모님 설득하고 협박해가며 사용법 일려드리고, 나가서 걸으시라, 사람만나기 무서우시면 젤 사람없는 시간에 아파트 놀이터라도 걸으셔라, 오늘은 얼마나 움직이셨냐, 그러시면 코로나보다 못걸으시는게 더 문제다 난리도 쳤다. 혹시 젊은 손주들에게 옮으실까 한동안 전화밖에 못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잘 막아왔고 성공한거 같았는데.......

엄마와 아버진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다.


그래도, 그래도......

어쩜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일년쯤은 남았는줄 알았다.

내년엔 엄마 소원대로 반찬도 하고, 안되도 한달에 한번, 가능하면 두 주에 한번은 보러가야지.

육십이 다되가는 딸이 아직 엄마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복이야! 그야말로 얼마 안남은 축복이지. 자주 가야지. 이런 맘을 먹은걸 엄마가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스스로 칭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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