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불빛이 줄지어 달린다.
다들 어딘가로 향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질문을 품고 있지 않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를 갉아먹으며 살고 있을까.”
나는 직장생활 10년차,
늘 “긍정 파이터”로 불렸다.
불합리해도 웃었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고, 동시에 회사생활의 원동력이었다.
언제나 웃고, 팀의 분위기를 띄우고,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다.
그 덕분에 인정도 받았고, 버틸 힘도 얻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긍정’이 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속은 상하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밤마다 내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밝고 성실한 직원이었겠지만,
정작 나는 점점 ‘나’로서의 색을 잃어갔다.
한국 사회에서 일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 아니다.
존재의 가치와, 체면과, 자존심이 얽혀 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멈추면
마치 낙오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남들은 다 버티는데, 나만 약한 걸까?”
그런 생각이 스며들면
쉼은 죄책감이 되고,
휴식은 사치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멈추는 법을 잃었다.
쉬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다시 달린다.
달릴수록 마음은 텅 비어가는데,
멈추는 순간 그 공허함이 너무 두려워서
결국 다시 달리기를 택한다.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마음은 가난해진다.
더 가지려고 애쓸수록, 내 안의 평화는 멀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많이 가지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조금 덜 잃는 데서 오는 것.
내 시간을, 내 감정을, 내 사람을 덜 잃는 데서.
요즘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아서 결국 노년이 된 사람들은,
정말 “인생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명함에는 직함이 남고, 통장에는 숫자가 쌓여도
그 속이 텅 비어 있다면 ...
그건 잘 산 인생일까?
이래도 저래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웃음, 함께한 추억이
진짜 자산이 아닐까 싶다.
돈이 남는 인생보다,
기억이 남는 인생이 더 단단하지 않을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표정,
나를 향한 아이의 웃음,
따뜻한 밥 한 끼 위로 건네는 말 한마디,
그게 결국 인생의 본질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잠시 멈춰 서본다.
더 가지려는 욕심 대신,
나를 조금 덜 갉아먹기로.
성공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존재하는 것.
더 나은 인생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