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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Sep 16. 2017

행복을 교환할 수 있을까

1. 평범한 교환학생의 덴마크 정착기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교환학생을 간다면

우리는 행복을 교환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슴에 품은 채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행복'이라는 주제는 덴마크로의 교환학생 파견 결정 이후 항상 내 머릿속에 있었다. 행복은 남녀노소, 사회·경제적 지위 상관없이 누구나 고민하는 일상 문제이자 평생의 철학적 고민거리다. 서점에 가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찾아보면,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당장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책들을 나는 대부분 읽지 않았다. 그냥 남들이 제시하는, 내 상황과는 동떨어진 행복한 삶의 모습,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의 이야기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에서 지내며 행복 연구를 하고 글쓰기를 준비하는 이유는, 행복은 건강한 인생을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행복하다'라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될 미래의 내게 견고한 기준과 관점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시제는 과거다.


7 steps to settling in DENMARK   

    누구나 알고 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건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모른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를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깨달았고, 깨닫는 중이다. 도착한 지 1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여 오르후스(Aarhus)로 기차를 타고 숙소로 갈 때까지는 작년에 유럽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똑같이 경험했다. '여행'의 의미를 '여기서 행복하기'라고 한다면, 순간 순간을 즐기는 YOLO로 빗댈 수 있다. 하지만, '거주'는 다르다. 덴마크에 도착한 후 1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려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에는 비교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 D : Delightful : pleased to be abroad at the first place

    재미있는 일의 연속이었다. 바르샤바를 18시간 동안 경유하는 폴란드 항공을 탔는데, 체크인 수속 때 대화를 나눈 폴란드인 Paulina와 비행기 좌석도 옆자리라 행복 인터뷰도 진행했다. 바르샤바에 경유하며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두 명의 학생들이 다가오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이후, 두 명의 안내를 받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들으며 함께 관광을 하고, 코펜하겐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는 선로 고장으로 인하여 30분이나 지연됐지만, 같은 칸에 있는 덴마크 노인과 캐나다 노부부와 대화를 하며, 이곳에서의 기대감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단순하지만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들은 흐릿함 그 자체인 덴마크 날씨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며 기쁨의 상태에 머물도록 해주었다.


2. E : Eroded : start to feel stranded or lost in unfamiliar situation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던 내 기분은 문자 그대로 침식하고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역시 돈이었다. 덴마크의 물가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버스 한 번 타는데 20 DKK(약 3800원)를 내야 하니 서울의 지하철과 버스가 그리울 정도였다. 다음 문제는 영어였다. OPIC AL, 토플 100점 이상의 점수만을 가지고 의사소통에 큰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외국 친구들이 얘기할 때, 절반 정도 이해하는 수준이었다. 외국 여행을 가서 누구나 의사소통은 할 수 있다. 친절하고, 천천히 읽거나, 발음을 정확한 시험용 영어는 누구나 듣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 특유의 악센트와 자음 탈락과 모음 변형이 된 목소리에 나는 점점 주눅 들고 있었다.


3. N : Negative : regret to be here while putting lots of reasons what l don't like

    이렇다 보니, 덴마크의 좋지 않은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는 거의 모든 유럽의 공통 현상처럼 보이는데, 거의 모든 사람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폈다. 유모차를 모는 엄마도 아기 옆에서 폈고, 실내든 실외든 가리지 않고 펴댔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 현상을 굉장히 심각하게 여겼는데, 정작 외국 친구들은 내 질문에 "I don't care"로 답변했다. 질문하는 사람이 괜히 무안하게 말이다.

두 번째는 언어. 영어는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있고, 모르는 건, 배움의 소재로 삼고 익히면 그만이다. 문제는 거의 모든 언어가 덴마크어로 적혀있다는 것이다. 덴마크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영어 병기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나는 당황했다. 당장, 설탕(sukker/sugar) 하나 찾는데 거의 10분이 걸렸으니 말이다.

시내와 학교에서 거리가 먼 기숙사의 위치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는 변덕스러운 날씨도 싫었다. 한 번은 마트에서 할인을 하고 있는 6 DKK 짜리 물을 샀는데, 페트병에 대한 재활용 대가로 3 DKK의 세금을 추가 지불했던 사실조차 덴마크에 정을 붙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4. M : Modified : get used to new environment, change set of mind to look at

    그러던 무렵, 생일을 맞게 되었다. 이 기숙사는 Common kitchen이라 부르는 주방을 각 층의 거주자 모두가 공유하는 형태인데, 대화의 장이기도 했다. 소소한 축하를 받고 친구들에게 위와 같은 감정을 얘기했더니, 하나같이 "That’s just a part of adaptation"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적응'이라는 말이 뭐 별거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덴마크에서 혼자만 겉돌고 있다는 느낌, 아무 이유 없이 무기력하게 생활을 하다 보면, 스스로의 상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적응이라는 것은 내 감정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에 적잖이 당황했다. 사람에 겐 역시 대화가 필요했다.


5. A : Adaptive : come to realize the former process is a kind of adaptation.

    "I hope you're settling in Denmark well". 덴마크에 도착한 후참 많이 들었던 말이다. 적응을 하고 있거나 또는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인지하는 순간부터가  정착하는 단계임을 깨닫기 까지 꽤나 오래 걸렸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길을 헤맸던 경험이 더 이상을 집까지 가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해주었고, 들리지 않는 원어민의 발음들을 관련 영상을 찾아 스스로 공부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들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겠다는 일련의 흐름이 적응임을 깨닫는 순간, 회복 단계로 접어들 수 있었다.


6. R : Recovering : make up for the missing days with full of passion

    그렇게 점점 상상했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갔다. 자전거를 타고 해변에 가거나, 전망이 좋은 공립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외국인 친구와 축제에 가서 미친 듯이 마시고 놀기도 하였다. 동시에, 나와 다른 환경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지금의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크고 넓게 성장할 시기임을 점점 깨닫는 단계였다.


DOKK1 : 개방적인 열람실 공간에서 바로 항구가 보인다, 편안하고 안락한 의자 디자인은 전형적인 덴마크 스타일이다.
DOKK1 : 반대편 유리를 통해 맑은 하늘과 이와 맞닿은 성당의 십자가, 대형 지구본, 항구의 모습이 보인다.


7. K : knowing : put myself in here and get to know gradually how they live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같은 기숙사에 있는 덴마크 친구들의 공통점은 세금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물론 덴마크 대학생은 생활비를 한 달에 약 108만 원 지원받는다. 대학은 당연히 무료) 또한 '타인을 돕는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이는 아마도 기본 생활수준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남을 생각하고, 관계를 맺는 것으로 의식의 확장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학교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들었던 인상 깊었던 설명 중에, 덴마크인들은 관계를 사회 안전망(Social security)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돕고 살아가는 것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믿음이 기저에 있는 듯 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가끔씩 1-7단계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움직이곤 하지만, 비교적 쉽게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물론 정상의 의미는 주관적이다. “From normal to the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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