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거리는 젊음. 비틀거리며 빛을 쫓는 B급 인생. 뒤틀린 감정을 따라가면 경쟁에 뒤쳐질까 봐 뒤틀린 채 달리는 쳇바퀴 인생. 소박한 성공을 바랐던 마음이 나를 가두는 속박이 되어버린 현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면이 필요했다."
행복이란 단어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감정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하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다. 행복은 감정임과 동시에 '가치'이기 때문이다. 고대 라틴어 발레레(Valere ; 건강, 생명력)에서 파생된 단어 'Value'. 즉, 가치 있는 것은 건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행복을 감정에서 가치의 층위로 전환하고자 쓴 책이다. 누구나 행복을 말하지만, 아무나 행복할 수 없다는 현실의 간극을 좁히고 싶었다. 하지만, 단어가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어 하나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내적 갈등이 나를 괴롭혔다. 20대의 나이로 삶의 지혜를 깨친 듯, 인생의 교훈을 가르치듯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나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김훈 작가의 문장을 본 이후,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은 점점 더 느려졌다.
"삶을 살아내는 자들은 삶을 설명하거나 추상화하지 않는다... (중략)... 이념이나 추상이 얼씬거리지 못하는 자리에서, 삶의 구체성은 뒤엉켜서 들끓고 힘찬 무질서들로 생동한다. " _ 김훈
김훈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무질서가 하나의 질서가 되어버린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 삶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복잡다단한 구체성에 얽히고설킨 경험의 그물망에서 한 가닥씩 매듭을 지으며 의미를 만들려고 하는 존재는 다음의 질문을 통하여 '자아'를 찾는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하지만, 본인은 행복에 대한 고민을 '나'로 국한시키고 싶지 않았다. 팔로잉 끊기와 혐오 표현으로 '우리'를 가장한 무리들만 늘어나는 현실에서 '행복'의 가장 큰 매력은 계층, 성별, 이념, 세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고민하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행복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공론'의 촉매제다.
이 글을 읽다 보면, 문득 이 책의 장르는 무엇일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감성 위주의 수필이라고 하기엔, 덴마크 관련 데이터들이 꽤나 있는편이다. 본인의 정의에 따르면, 이 글의 장르는 '팩토리'다. 팩토리는 Fact와 Story가 결합한 것으로,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팩트가 중요한 이유는 행복이 우리의 희망과 상상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의 삶을 담았다. 결국 이 글은 내가 가장 행복하기 위함이었다. 글쓰기는 기억을 초월하는 기록이었고, 그건 경험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체험이었다. 내게 여행이란 '여기서 행복하기'의 준말이다. 따라서, 순간의 행복을 어떻게 붙잡을지가 중요했다. 경험상 여행에서 아름다운 건물에 황홀함을 느끼는 감정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2주 정도였다. 그래서 찰나의 순간에 마주하는 감정들을 글로 붙잡아 오랫동안 새로운 감정들과 대화를 하고자 했다. 미래에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자 할 때, 사진과 짧은 글만으로는 소중한 기억들을 반추하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다.
글을 쓰면서 종종 내 삶을 돌아봤다. 27년의 인생 동안 스스로에게 너무나 야박했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며 관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항상 채찍질하며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인생을 정리하며 과거의 나를 다독여주고 싶었다. 나아가 취업 이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미래의 내게 20대의 초심과 순수함을 담은 자서전을 바치고 싶었다. 이 책은 대학 졸업을 앞둔 내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들 한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덴마크에서 행복을 교환해왔니?". 솔직히 모르겠다. 여전히 행복은 어려운 주제고, 나를 둘러싼 야박한 현실에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글을 끝내려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행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교환할 수 있을까?" 덴마크발 한국행, 행복한데니씨 편은, 무사히 착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