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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Nov 12. 2017

행복의 온도는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을까

10. 덴마크 날씨와 휘게 문화의 상관관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따뜻해본 적이 있는가"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교환학생으로서 외국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겨울에는 특히 '난방 시스템' 차이에서 타지에 있음을 느낀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내디딘 발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덴마크에선 느낄 수 없다. 필자가 살고 있는 기숙사는 라디에이터를 사용해 난방을 하기 때문이다. 라디에이터가 낯설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예비역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최소한 자기 군 복무 일수만큼은 라디에이터 밸브를 돌려봤으니까.. 


    날씨는 타지에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만드는 대표적인 변수다. 북유럽에 속한 덴마크는 추울 것 같지만 사실, 한국과 기온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차이가 존재하는데, 옷을 겹겹이 입고 추위를 맞이하는 본인과 달리, 반바지와 상의 하나로 추위를 무시하는 바이킹의 후예들을 볼 때마다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Temper와 Temperature

     TEMPER의 어원은 라틴어 Temperare로 알려져 있으며, 그 뜻은 적당히 섞다(mingle, restrain)라고 한다. 위 두 단어와 어원의 뜻을 조합해보니 다음 생각에 도달했다. 

"한 국가 구성원의 기질과 성향은 그 나라의 기온과 온도의 적당한 혼합물은 아닐까?"


    “아프리카, 남미 사람들은 따뜻한 기후에 살아서 여유로운 성미를 가졌지만 동시에 다혈질이기도 하다.” 이런 선입견처럼 보이는 예가 아니더라도, 미세먼지만큼 늘어나는 마스크족(族)과 "미세먼지가 걷히고 맑은 하늘을 보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라며 말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Temper, origin of the word]의 구글 검색 결과


"Weather doesn't matter. Rain can't stop me cycling"

    비 내리는 아침에 자전거를 탈까 말까 고민하는 내게 덴마크 친구 크리스토퍼는 "자전거 타는데 날씨가 뭔 상관이야. 어차피 비는 맨날 오는데"라며 조언(?)을 해줬다. 사실 덴마크는 북유럽에 속하지만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북유럽 기후는 아니다. ‘Weather Online’은 덴마크 기후를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 The climate in Denmark is pleasant in the summertime (May - August).  September can often be very rainy. The Winter in Denmark can be quite cold. Temperature falls sometimes until 15 - 30 °C below zero. Then the country is ruled by snow, ice and icy winds. Even in April it is still possible to have a snowstorm. In the wintertime the sun rises only little above the horizon and for months (roughly October - March) the days are dark and short. "

위 설명처럼, 덴마크는 9월에 비가 참 많이 내렸다. 학교에서 웰컴백에 판초 우의를 담아줄 때 의아했었는데 비를 맞고 아무렇지 않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에 금방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인간은 기후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오르후스 대학교 국제교류처에서 주는 판초 우의

    그렇다면, 적응이란 무엇인가?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맞추어 응하거나 알맞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Temper의 옛 의미(bring something into the required condition by mixing it with something else)와 적응의 의미는 상당히 닮았다. Temperature와 Temper 사이에서 인간들은 적응 과정을 거치며 각자의 템포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덴마크의 행복 라이프 스타일, 휘게(Hygge)도 그렇다.                            


기후에 의해 이리저리 휘게 된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 Hygge

     덴마크에서 지내다 보면 휘게는 상당히 진부한(?) 개념이지만 동시에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용어기도 하다. 

Hygge is a Danish and Norwegian word which can be described as a quality of cosiness and comfortable conviviality that engenders a feeling of contentment or well-being. In recent years it has been described as a defining characteristic of Danish culture. _ Wikipedia

    덴마크인들은 'Coziness'(아늑함)를 정말 자주 언급한다. 벽난로에 불을 지펴놓거나 은은한 양초를 켠 후,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가족 또는 친구와 맛있는 식사와 대화를 하는 모습. 이것이 덴마크의 전형적인 휘게 라이프의 모습이다. 하지만 휘게란 단순히 여유롭게 사는 것을 넘어, 삶을 최대한 즐기며 사는 것에 가깝다. 

   

     사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용어다. 덴마크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대부분  "휘게가 휘게지. 그냥 쉬고, 편안히 지내는 것?" 과 같이 다소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필시 무성의함은 당연함에서 나왔으리라 생각하며 다음 생각으로 넘어갔다.


휘게, 악조건의 기후가 빚어낸 인간의 적응과 발전 양식

    결핍은 채움을 낳는다.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으면 답답함을 강하게 느끼는 필자는 왜 휘게가 덴마크인의 대표적인 삶의 양식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끝끝내 도출한 답변은 처음과 같았다. “결핍은 채움을 낳는다” 


    덴마크 겨울 날씨는 암울하다. 비가 자주 내리고, 일조 시간이 굉장히 짧다. 오후 5시, 되어도 암흑이 덴마크 하늘을 뒤덮고 사람들에게 조용히 지내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시간이다. 실제로 겨울에는 오후 4시만 되어도 어두컴컴하다. (2017년 11월 11일 기준, daylight hours in Copenhagen 07:38 - 16:08, in Seoul 07:08 - 17:23. 덴마크 일조 시간이 약 1시간 30분 정도 짧다.)


    이런 기후를 고려하면, 덴마크의 휘게 라이프는 어쩌면 당연한 적응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잦은 비바람과 긴 어둠의 향연은 사람들의 실내 활동을 부추기는 강력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밖이 춥기 때문에 안에서의 아늑함을 원했고, 빛을 찾아보기 힘든 하늘을 은은한 조명으로 대체하려 했다. 하지만, 이유가 과연 이것뿐일까? 


    인간은 협동을 통해 적응을 넘어 발전하고 진화한다. 현재 덴마크는 주당 37시간 근무가 원칙이다.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짧은 국가 중 하나다. 덴마크인들은 직장 이후의 삶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휘게를 즐길 수 있는 여력이 생기게 됐다. 즉, 기후에 정책 템포를 맞춘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다. 본인은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덴마크에 이르기까지 기숙사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는데, 이곳처럼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도 없다고 느꼈다. 내가 살았던 기숙사는 한 층에 15명이 거주하며, 주방과 휴게실을 공유하는 형태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매주 공동식사(Common dinner)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2명씩 짝을 지어서 메뉴를 정해서 요리를 만들고, 다 같이 식사하고, 서로의 안부도 묻고, 기숙사 생활 규칙과 건의 사항에 대해 토론하고, 함께 설거지하며 마무리한다. 할로윈, 크리스마스, Chamber tour 등 특별한 날에는 다같이 파티를 준비하고 즐긴다.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않은 건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떠올려 보면 친한 사람끼리만 친할 뿐, 함께 어울리도록 하는 적극적 활동은 없었다. 즉, 휘게 라이프는 자연에 적응하고 극복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한 인간 친화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냄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는 게 내 결론이다. 그렇게 덴마크인들은 행복 장작을 따뜻하게 지피고 있었다.


행복의 온도는 존재할까?

    보통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어보면 봄이나 가을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해봤다. ‘행복을 자극하는 특정 온도가 존재할까?’ 그러던 중 ‘북유럽 겨울의 행복 온도’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기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한국인들이 북유럽에서 추위를 느끼는 원인 중 하나는 한국의 일반 가정집보다 낮게 설정된 실내 온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덴마크 실내온도는 대체로 20도 정도이며, 이 온도는 에너지 효율 정책과 높은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행복온도라는 것이다. 정말 행복온도 라는 게 존재할까? 


    AMS(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에 게재된 오사카대학교의 Yoshiro Tsutsui 교수의 [Weather and Individual Happiness]에 따르면 행복온도는 13.9도였다.

Empirical analysis reveals that happiness is maximized at 13.9 °C in a quadratic model. The other meteorological variables, humidity, wind speed, precipitation, and sunshine do not significantly affect happiness. Our result that temperature weakly affects happiness is consistent with most of the previous studies that investigated within-person effects of weather on mood.

     행복 온도의 존재 여부는 중요치 않다. 한국이나 덴마크에서나, 외국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건 온도 자체보다 사람의 온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 기온은 우리 행복에 미약하게 영향을 줄 뿐이다. 


행복의 온도는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을까

    열을 발생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이 행복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마찰력을 사용해야 한다. 마찰력이란 두 물체의 접촉면 사이에서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는 힘이다. 즉, 두 표면이 부딪히게 되어 작용반작용 현상이 발생할 때 생기는 에너지가 열을 만든다. 


    마찰력과 행복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인간은 기후를 바꿀 수 없다. 기계로 실내 온도를 조절할 수 있으나 이는 우리의 행복과 깊은 관계는 없다. 우리의 행복 온도는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발생한다. 그 옛날, 지금보다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정이 넘치는 삶이었다고 회상하는 이유는 옹기종기 둘러앉아 얘기를 하며, 서로의 숨결이 방 안을 따뜻하게 했기 때문이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따뜻해 본 적이 있는가.” 불은 산소 없이는 스스로 탈 수 없다. 인간의 행복 온도가 타인의 숨결 없이 따뜻해질 수 없는 것처럼…




참고 자료


1. https://www.weatheronline.co.uk/reports/climate/Denmark.htm

2. https://globuzzer.mn.co/posts/1323712

3. http://journals.ametsoc.org/doi/full/10.1175/WCAS-D-11-00052.1

4. https://www.timeanddate.com/sun/denmark/copen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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