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 상실의 시대

12. 기쁨과 슬픔은 같은 길에서 찾아온다

by AND ONE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가끔씩 우리에겐 책을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문장이 있다. 내겐 이 문장이 그랬다.


'나는 눈에 띄게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무엇을 해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고 까닭 없이 침울하기만 했다.'


어떤 문장이 내 마음을 대변해준다고 느낄 때면 우리는 책장을 덮고 싶은 마음을 미뤄두고 또 다른 페이지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렇게 나는 2박 3일간의 짧은 도쿄 여행을 하면서 45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다 읽어버렸다. 도쿄에서 도쿄를 배경으로 한 책을 읽는다는 건 나름대로 매력 있는 독서법이다. 3일 내내 내렸던 비가 오는 도쿄에서 주인공이 맞았던 비와 흐르는 눈물을 생각하며 거리를 걷는 것은 혼자 궁상떠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나라를, 여행지를 가장 감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여행법이기도 하다.


감상주의에 젖어 매 순간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건 우리의 행복에 좋지 않을 수 있지만 일상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닐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감상의 바다에 표류할 수 있는 그런 여유. 누군가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우연히 듣게 되는 내 목소리를 발견하는 기쁨. 나는 단지 감상의 바다에 표류할 뿐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글로 써보지 않고서는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인 것이다.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엔 없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 그것뿐이었다.
다만 나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거야. 인생은 짧아.
인간은 두 사람만으로는 상대를 끝까지 떠받쳐줄 수 없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쓰러지려고 하면, 다른 한 사람이 떠받쳐주기보다는 함께 쓰러져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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