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울증, 삶의 의미와 즐거움에 관한 괴로움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찾다가 보면 역설적인 상황에 봉착한다. 우리는 행복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 행복을 느끼는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한 상태는 우울이 갖는 의미와는 별개로 그걸 느끼는 본인에 대한 고찰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가 왜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슬퍼야 하는 것인지. 우울증이 나를 찾아온 건지 또는 나도 몰랐던 또 다른 내가 우울증을 찾아간 것인지. 감정의 주체와 방향에 대한 고찰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우울증은 모순적이다. 본인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세상 속의 나와 내가 아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자아상과 일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참을 수 없는 자기혐오의 감정은 파괴적이다. 어쩌면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한다. 과거엔 단순히 먹고살기 바빠서 우울증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다. 나는 과거인이 아니고 현대인도 될 수 없다. 그런 내게 우울증은 사치다.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고 쓴 글은 아니다. 위로보다는 끊임없이 위를 보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게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여기에도 있음을 알릴 뿐이다. 그 알림에 울림이 있다면 더욱 바랄 나위 없고.
우울증은 가치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슬픔에 잠긴다. 동시에 슬픔을 거부한다. 이럴 때는 슬픔 속에 깊게 빠졌다가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남성이 걸리는 자율적 우울증의 경우에는 관계를 통해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성취감과 긍정적인 감정은 타인과의 관계와 상관없이 별도로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남자라고 무조건 고독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이 의존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