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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Feb 23. 2020

[밑줄독서]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리스인 조르바

18.  나에게로 떠나는 야간 자유 비행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음식을 먹고 그 음식으로 무엇을 하는지 대답해 보시오. 두목의 안에서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 설명해 보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려주리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최근 3년간 삼성전자를 지원한 경험이 있다면, 이런 자기소개서 문항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면접 때 이 문항의 답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Essay 2 본인의 성장과정을 간략히 기술하되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 인물 등을 포함하여 기술하시기 바랍니다. (※작품 속 가상인물도 가능)

그리스인 조르바를 얘기했다. 내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만드는지 고민했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행동은 항상 결과를 남겨야 했다. 그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었다. 나의 성장 공식은 항상 변증법적이었으니까. 그게 글이든 영상이든 어떤 형태이든 간에 문제의식을 갖는 모든 일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 흔적들이 모여 나의 향기가 되어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똥만 싸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비싼 돈 주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똥만 싸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똥을 내가 치우는 건 아니지만, 혐오하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를 죽이는 일이니까. 아무런 실속 없이 시간을 보낸 날에는 컵라면 하나면 충분했다. 식사의 법칙이었다. 퇴근길에 과일을 사 오거나 치킨 한 마리 들고 오시는 부모님을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음식에는 고생의 등가교환 법칙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실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유인 조르바를 만나며 자유를 썼다. 그 자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로 이어졌으며, 한국인이자 평범한 직장인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유인을 꿈꾸는 나에게 당도했다. 당돌했다. 학생의 나는 국가와 직장이라는 소속을 뛰어넘어 세계인들을 만나며 꿈을 얘기하고, 어떤 아이디어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은 당당히 돌진한다. 목적지를 향해. 지금은 어떠한가. 불안과 욕구불만으로 불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저공비행할 뿐이다. 불필요한 위험과 위협을 수반하며.


자유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만큼 자유롭지 않다고 느낀다.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자유의지를 갖고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존과 현존재 너머의 나를 찾는다. 2015년에 읽고 2020년에 다시 읽다. 2025년에 다시 꺼내 읽을 그날까지. 자유비행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은 믿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고,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오.
나의 인생은 잘못된 궤도를 가고 있었고,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도 단지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나는 어떤가? 나는, 이따금 내 길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다는 느낌, 내 신념은 불신의 모자이크라는 느낌 때문에 자주 혐오스럽다네. 이따금 흥정이라도 해야 할 기분이네. 한순간을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나머지 인생을 던져 버리자는 것이지.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은 팔자소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겁쟁이로 사태를 바로잡아 보려고 했던 터였다.
계절의 어김없는 리듬, 무상한 생명의 윤회, 태양 아래서 차례로 변하는 지구의 네 가지 얼굴, 생자필멸, 이 모든 사실이 다시 한번 내 가슴을 조여 왔다.
동행이 있어서 둘이서 웃고 떠들다 보면 파도와 새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새와 파도가 말을 걸지 않는지도 모른다. 둘이서 수다의 구름 속을 거니는 걸 보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지도 모른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정복하면서 나는 흡사 위험에서 벗어나 무럭무럭 발전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서평) 구체적인 체험으로서의 여행이 추상적인 꿈을 심화시키고 그 꿈이 여행의 무대를 확장시키듯이, 그의 삶이라는 것도 육체와 영혼의 상호작용을 통한 심화와 확장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여행과 꿈이 상호작용을 통하여 늘 그의 삶을 풍부하게 하듯이, 영혼과 육체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통해 그의 존재를 드높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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