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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Feb 27. 2020

[밑줄독서] 무라카미 하루키 - 해변의 카프카

19.  강을 건너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나는 자유다, 라고 생각한다. 눈을 감고, 내가 자유다, 라는 것에 대해 한동안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잘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외톨이라는 사실뿐이다.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건 불운이나 슬픔, 오해와 몰이해 위선과 증오와 같은 것들에 견뎌내는 강함이다. 강해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글은 닿을 수 없다. 결핍이 결국엔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불확실한 확신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다. 의지해서는 안된다. 의지하는 순간 나의 불행과 불안, 불만과 불합리한 모든 상황 등을 탓하고 싶어 질 뿐이다. 나는 나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있기 위해서라도 두 손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 두 손 두발 든 채로 현재에서 행복을 찾아도 될 텐데, 안주하는 순간 내 인생에 완주는 없을까 봐 겁이 난다.


왜 강해져야만 하는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에게 공감했을까. 시공간을 초월하는 수많은 메타포 속에서  현실의 제약과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한 청년의 차분하지만 처절한 모습에 끌렸던 이유는 뭘까. 15세 청년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몸을 단련하고, 항상 책을 읽는 그 행동 규범이 나와 공명한 것은 아닐까. 언제쯤 강한 남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나라고 하는 틀 속에 있다. 나라는 존재의 윤곽이 찰카닥하는 작은 소리를 내면서 딱 하나로 겹쳐지며 자물쇠가 채워진다. 이렇게 해서 나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하는 장소에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악착같이,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어떤 종류의 완전함이란 불완전함의 한없는 축적이 아니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
무언가를 강렬하게 찾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피하려 한다.
인간은 각자가 지닌 결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질(美質), 즉 타고난 장점이나 아름다운 성질에 의해서 더욱 커다란 비극 속으로 끌려들어 가게 된다
요컨대 사랑을 한다는 건 그런 거야,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네 몫이고, 깊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것도 네 몫이지. 넌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그것을 견뎌야만 해.
추억이란 당신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의 몸을 안쪽으로부터 찢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나 혼자가 되어 페이지 사이의 세계에 몰입한다. 나는 그 감각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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