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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an 16. 2018

우리의 행복은 여전히 성적순일까

19. 경험 중독, 학력을 극복하는 행복 비책

“성공과 실패 사이를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그 둘의 앞 글자인 ‘성실’이 인생 공식이 되어버린다. 강요된 성실함은 때론 '실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교환학생 생활이 끝났다. 덴마크는 1월 초중순까지 시험을 보는 게 일반적인데, 필자 또한 1월까지 보고서를 쓰다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보통 PASS만 받으면, 학교에서 학점 인정을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덴마크는 성적 평가가 철저해, F를 받는 학생이 매해 있을 정도다. 


    우리도 가끔 인생에서 F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이 자주로 바뀌고 매일이 되는 빈도의 인플레이션은 물가보다 빠르게 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건 누군가의 인생을 편협한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로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과 실패를 오로지 성실함과 결부시키는 생각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원초적 우연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점에서 성공과 실패화의 양극화는 물질보다 오히려 마음에서 그 괴리가 크게 나타난다.


    몇 번의 시험으로 우리 인생은 등급화 된다. 본인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사회에서 이미 나눠진 서열화에 본인도 모르게 저열한 감정에 우쭐하기도, 때론 주눅 들기도 할 것이다. 사무직이 대우받고, 육체노동은 천시받는다.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상책이 된 지 오래다. 뒤죽박죽이다. 성적이 오르면 배우자 얼굴이 바뀔 것이라는 수험생의 자기 최면은 모두의 주문이 되어 하나의 명제를 만들었다. "행복은 성적순"


가난한 나라일수록, 학력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행복은 성적순일까? 우리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라고 하는 이유는 더울 때 시원하게 일하고, 추울 때 따뜻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졸자의 자격으로 최소한 자신의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곳을 찾고자 한다.


    덴마크는 다를까? 비슷하다. 덴마크의 상경계열 친구들도 컨설팅 회사나 투자 은행을 가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과 같지는 않다. 우리가 덴마크를 포함한 선진국들을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업 간의 연봉 격차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본질은 타인을 겉만 보고 판단하며 ‘상하관계’를 나누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동경한다. 이런 사고의 기저에는  ‘얀테의 법칙’이 존재한다.

1. You're not to think you are anything special.
2. You're not to think you are as good as we are.
3. You're not to think you are smarter than we are.
4. You're not to imagine yourself better than we are.
5. You're not to think you know more than we do.
6. You're not to think you are more important than we are.
7. You're not to think you are good at anything.
8. You're not to laugh at us.
9. You're not to think anyone cares about you.
10. You're not to think you can teach us anything.

    얀테의 법칙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너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모순적이다.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라니... 하지만 이때의 다름은 방향이 다르다. 한국이 주로 수직적 상하관계의 차별성을 추구한다면, 덴마크는 수평적 동등관계의 ‘공존’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의 이유는 차이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공존은 차이를 내포한다. 덴마크 친구들에게 얀테의 법칙을 물어보면, 옛날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릴 때부터 나름 중요하게 배운다고 한다. 물론, 남들과 다르고 싶고, 과시욕이 불타오르는 덴마크인들도 없지 않다. 얀테의 법칙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내가 덴마크에서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느낀  모순과 위선은 역겹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회를 평가할 때의 기준은 일부 또는 예외 사항이 아니라 현상의 ‘평균’에 두어야 한다.


    ‘평균’이라는 단어, 참으로 묘하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017년 기준 29위(29.730$), 덴마크는 9위(56.335$). 숫자만 보면 2배 정도 차이가 나지만,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 평가기준(PPP)으로 덴마크와 한국의 격차를 비교해보면, 덴마크 19위(49.613$), 한국 29위(39,387)다. (PPP의 특징 상, 물가가 높은 국가의 구매력이 1인당 GDP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것이 일반적). 즉, 한국과 덴마크의 삶의 질 차이는 ‘평균적으로’ 크지 않아야 한다는 게 평균의 논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과 덴마크의 '학력'에 따른 행복도는 사뭇 다르다.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Health, wealth, and happiness: Why pursue a higher education?)에 따르면, 가난한 나라일수록 교육 정도에 따른 행복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The relationship between education and happiness depends in part on the wealth of your home country. In other words, if you live in a poor country, education is closely tied to happiness, but if you live in a rich country, education has only a weak effect on happiness. "

  우리나라는 수치상 물질적으로 가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학력이 행복을 좌우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학력이 개인의 행복을 측정하는데 과대평가가 되어있는 것일까? 


    그렇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빈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질과 달리 정신적 결핍은 과잉에서 비롯된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는 정신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많아 학력이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중이다. 필자도 가난한 정신력의 소유자 중 하나다.


이성 중독: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혹자는 블라인드 면접이 실시되고, 지역할당 채용도 하면서, 점차 학력이 미치는 영향이 감소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학력이 반드시 '대학'의 이름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공무원 열풍을 넘어선 공무원 '중독' 현상이다. 공무원 열풍에는 기본적으로 ‘공정성안정성’ 그리고 ‘워라밸’을 추구하는 현세대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시험’만이 수저를 물지 않고 태어난 사람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장소라고 여긴다는 안타까운 현실도 반영되어 있다. 정시 퇴근을 눈치 보고하지 않을 수 있고, 퇴근 이후의 저녁 있는 삶을 - 당연해야 할 삶의 모습을 -  공무원들이 주로 누리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원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2017.01.09) 경제행복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공무원의 행복 지수는 전문직 다음으로 높다. 여기에 연령별로는 20대의 행복도가 가장 높다. 즉, 20대에 공무원이 되면, 한국 사회에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공무원 중독 현상에 다른 요인도 있다고 생각한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이들이 사회에서 무시 받지 않는 직장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아무나가 되기 싫은 아무개들의 욕망이 9급 공무원이라는 단어로 집약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 열풍은 기존의 고학력자, 전문직들의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공식을 깼다기보다는 행복은 무색무취의 성실함 순서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었다. 


소명의식을 가진 공무원을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공무원 열풍이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현실 인식에서, 자신만큼은 국가가 빚에 허덕여도 연금 받으며 살 수 있다는 자족적 인식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열풍이 식지 않는 이유는 위와 같은 생각이 상당히 합리적인 사고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더더욱) 


    바로 이 지점에서 행복의 하향평준화가 시작된다. 라우나탄 교수의 저서 [왜 똑똑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에는 행복을 방해하는 일곱 가지 죄가 소개된다. 1. 행복을 평가절하하기, 2. 우월성 추구하기, 3. 사랑을 갈구하기, 4. 지나치게 통제하기, 5. 남을 불신하기, 6. 열심히 또는 무심히 열정을 추구하기, 7. 이성에 중독되기. 이 중에서 공무원 열풍은 두 가지의 죄를 범하게 된다. 


    첫째, 9급 공무원은 하고 싶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없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 근데 남한테 자신의 직업을 말해도 부끄럽지는 않은 직업이라는 판단의 총체다. 그래서 목적의식 없이 무작정 열심히 하고, 운 좋게 목표를 달성해도 이후에 따라오는 녀석은 행복이 아니라 감정의 공복 상태일 것이다. 둘째, 공무원 선호의 대다수는 워라밸과 보장된 노후가 그 이유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비극이다. 왜냐하면, 공무원(Public officer)이어야 하는데, 이유는 온통 사적(private)이기 때문이다.


행복 중독: 감성이 아닌 경험에 중독되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성이 아닌 감성을 따라야 할까? 행복감을 느끼는 데 방해되는 중독은 이성 중독뿐만이 아니다. 감성 중독도 위험하다. 필자가 생각하는 감성 중독이란 부당하고 억울한 환경이 야속한데 사회에서는 이런 속사정을 알아주지 않아서, 자신의 상황에 공감할 사람은 스스로 밖에 없어서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감상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행복의 정복] 저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으로부터 최대한의 고통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감상주의적인 태도일 뿐이다." 필자가 감상적인 태도를 경계하는 이유는 그러한 생각이 현재의 처지를 낫게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악화시키는 퇴행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성이 아니라 경험에 중독되어야 하는 이유는, 행복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성 중독을 대표하는 단어가 바로 ‘헬조선’이다. 자조적 단어로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고 공론화시키는 행위는 필요할 수도 있다. 문제는 무기력과 냉소의 시각으로 현실을 인식할 때, 그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론의 목적과 의미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변화의 맥락에서 그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험을 해야 한다. 흙수저론이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어에도 'silver spoon, golden cutlery, golden shovel' 등의 표현이 존재한다. 설사 물고 나온 수저가 정해졌을지언정, 이를 대하는 태도 역시 본인의 선택이다. 현명한 선택은 여러 선택지를 평가할 수 있는 경험치가 쌓여야 가능하다. 즉, 경험은 올바른 비교를 위한 가늠자다.


    그렇다면 경험 중독이란 무엇인가? 언제부턴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업 전에 유럽 여행을 다니는 게 하나의 필수 경험처럼 인식되고 있다. 물론 이런 경험도 좋다. 여행 자체만으로 느낄 수 있는 게 많다. 다만, SNS에 자신이 나온 사진을 올리는 것만으로 여행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건 전시용 경험에 가깝다. 특히 유럽 여행은 2주 정도만 지나면, 비슷한 성당과 비슷하게 예쁜 거리들에 감각이 무뎌지는 게 일반적인데, 소매치기와 인종 차별로 날 선 감각과 대조를 이루면 경험 자체가 행복으로 가득 차기도 힘들다. 


    중독은 연쇄적인 행동을 낳는다. 이런 맥락에서 진정한경험 중독이란 경험이 새로운 경험을 낳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통해 세상이 넓다고 느꼈다면 여행 일정을 혼자 다니는 날, 외국 동행과 같이 다니는 날, 한국 동행과 같이 다니는 날을 나눠서 다녀보는 것이다. 작게는 외국인에게 먼저 말 걸어보기, 눈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웃어보기 등으로 조그마한 변화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행복은 상대적 감정이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경험은 쌓인다. 경험의 확장은 곧 인식의 확장이고, 비교 기준의 다양화와 객관화를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행복 문항을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으로 작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 중독은 개인의 관점에서 행복의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行) 복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에 살면서 느낀 건 복지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고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젊으나 늙으나 '노후대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덴마크 사람들은 노후대비보다 현재의 경험을 위한 여행을 추구한다. 여행이 곧 노후대비다. 물론 그들은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거의 없다. 우리는 어떠한가. 가끔은 보험 자체를 위해서 노후대비를 하는 것처럼 너무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가 무엇인가. 현재의 합이다. 하지만 한국의 미래는 현재에다가 시그마(∑)를 붙여서 '극한'까지 보내버렸다. 무한이 되었다. 그래서 미래가 눈 앞에 보이지 않고, 막막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A kinder, gentler philosophy of success]의 테드 강연에서 성공과 실패를 좀 더 '행운'과 '불운'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누군가는 부모도 '능력'이라고 얘기하지만, 어느 가정에서 태어날지는 인간의 '선택'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나라가 진정 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발전도 중요하지만  얀테의 법칙처럼 '선험적' 요인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성과 감성의 중독은 쌓일수록 해가 되지만 경험은 쌓일수록 풍화 작용을 거친다. 왜냐하면  경험의 축적은 지혜로 압축되기 때문이다. 압축을 통해 생긴 그 공간이 곧 여유다. 그리고 여유가 곧 경험으로 바뀔 때 행복으로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경험하라. 시험공부만을 경험했기 때문에 행복의 기준이 오로지 그리고 오롯이 한 곳에 고착화되는 것이다. 성공하고 나아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공의 정의를 세워보고, 성공을 위한 행동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다른 분야에도 성공의 씨앗을 뿌려놓는 경험을 해놓아야 한다. 그렇다 보면, 어느 분야에서 최고는 아닐 수 있겠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많아져, 삶의 의미를 풍성하게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행복의 풍미는 곧 경험에서 나온다.


    행복은 분명 운 적인 요소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행복을 운에 맡길 것인가? "Luck favors the prepared" 운도 준비된 사람이 잡을 수 있다. 준비는 경험에 비례한다. 자조보다는 자존을, 변명보다는 변화의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자. 행복은 의무가 아니다.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은 경험 순이다.




참고자료

1.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841&Newsnumb=2017071196


2.  http://hri.co.kr/upload/publication/201719103054[1].pdf


3.http://www.thepursuitofhappiness.com/insight/learning-way-happiness/

 4. https://www.ted.com/talks/alain_de_botton_a_kinder_gentler_philosophy_of_success/transcript?share=16c0ae1e45&languag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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