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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Dec 14. 2017

우리의 교육은 행복할 수 있을까  

16. '결격'의 덴마크 교육, 한국 교육에 필요한 '결격 사유'

"Gather your rosebuds while you may, old time is still a 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The latin term for this sentiment... Listen… Do you hear it? (whispers) Carpe. (whispers again) Carpe. 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카르페...카르페...카르페 디엠을 외칠 때, 내겐 이렇게 들렸다.  "칼을 빼...칼을 빼...칼을 빼 지금!". 현재를 즐기라는 영화 속 선생님의 조언은 한국의 모든 교육 종사자들, 심지어 학생들에게도 이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칼을 빼...칼을 빼...칼을 빼 지금... 지옥 같은 교육 현실을 감내하지만 말고, 바꿔나가는 변화의 검으로 길을 만들자고. 영화를 보면서, 덴마크 대학교에서 1학기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깨달은 건 행복 교육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 교육은 곧 '결격'의 교육이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선생(님)들의 모욕이었다.

    결격의 교육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앞서 교육자로서 결격이었던 선생(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때는 중학교 1학년 반장 선거 날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어릴 때도 반장 입후보를 '셀프 추천'했다. 그리고 돌아온 담임선생(님)의 대답. "너는 반배치고사 성적이 99등인데 어떻게 그 성적으로 반장이 되겠다고 하는 거니? 1등으로 들어온 친구도 가만히 있는데".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6년 넘게 하던 태권도 선수부 생활을 그만두고 동네 학원을 등록했다.  99의 숫자를 1로 바꾸고 운 좋게 국제고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그곳에는 또 다른 치욕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학 후 처음 치른 모의고사에서 수학 시험을 망쳤던 내게 수학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너 같은 애가 국제고에 들어온 거니? 이 점수면 일반고보다도 못한 거야. 창피한 줄 알아야지". 치욕의 상담을 마친 후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던 기억은 모욕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처절한 '정화' 행위였다. 사감 선생님의 감시를 피해 수건으로 스탠드를 감싸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제 풀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침 점호 전에도 수학 문제를 풀은 결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간고사 수학 1등을 했었다. 그렇게 굴욕의 순간들을 노력으로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은 흘러 고2가 되었을 때, 어느날  국어 선생(님)은 1교시 시작 전에 먼저 나와 면학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와 친구를 보더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일찍 죽어"라는 신개념 속담을 툭 던지고 갔다. 단어 암기를 위해 들고 다녔던 내 수첩은 모욕감을 이기지 못한 채 굴욕감으로 너덜너덜해지는 것만 같았다. 굴욕감은 분노가 되었다가 무기력함으로 바래졌고 그렇게 고3이 되었다. 오르지 않는 성적에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이를 해소하고자 농구를 자주 하며 자습 시간에 종종 늦었는데 그때마다 부장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국제고가 아니라 국체고 학생인 것 같아".


    학창 시절, 내가 가장 먼저 듣고 싶은 말은 '왜'라는 이 한 단어였다. '너는 성적이 낮은데'가 아니라, '왜' 반장이 하고 싶은 지에 대한 질문을 듣고 싶었고, '왜' 수학 성적이 낮게 나왔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먼저 물어봐주길 원했고, 수첩에다 적고 암기만 하던 내게 '왜' 그런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지 이유를 먼저 물어봐주는 선생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결격'의 교육 : 결이 맞고 격의 없는 교육

        대학생이 되기 전에, 학창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인생 선배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한번씩은 대학 교육에 기대를 품는다.  물론 좋은 교수님들도 있다, 다만 '님'이라는 '격'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규정할 때 필요한 태도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예외가 아니라 평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가 사회를 규정한다."(문유석 판사 칼럼 中)


    덴마크에서의 수업 내용이나 방식은 한국과 차이가 없다. 시험이 많이 없어서, 경쟁이 없어서 덴마크 교육이 좋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덴마크는 무상 공교육의 불만이 사교육 시장에 급속도로 유입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에서의 1학기가 행복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교실에서 만큼은 서로가'동등'했기 때문이다.


    개강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담당 코디네이터는 다소 충격적인(?) 덴마크 문화를 소개했다. "덴마크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를 'professor'라고 부르지 않아요. 그냥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그냥 바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세요." 우리는 어떠한가.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교수'님'으로 존중을 표시하는 행위는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존중의 방향이 일방통행을 할 때다. 교수가 잘못해도,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밉보이면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교환학생 신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덴마크 학생들은 A, B, C, D까지 똑같이 PASS를 받기 때문이다.(참고로 Aarhus BSS의 경우 평균 학점이 6.89 정도로, 7점인 C학점을 약간 하회한다) 즉, 그들의 태도와 제도는 '교육 평등'의 테제(These)인 것이다.


결이 맞는 교육 : 디지털 치매들이여, 변화의 물결을 허하라.

    결이 맞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건 '인문'의 교육이다. 인문은 무엇인가?'인문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다.'(최진석) 우리 인간에게는 고유의 모양이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가면 수업 방식이 너무나도 구시대적이라서 놀란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학생들의 삶의 모양에 낡은 교육 방식을 고수하는 한국. 덴마크는 어떨까?


    덴마크로 오기 전에 여기 학교에서 몇 가지 당부사항을 메일로 보내줬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노트북'을 지참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노트북이 없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다. 시험을 치를 수도 없다. 장단점이 있다. 단점은 많은 친구들이 페이스북을 한다. 미국이나, 남유럽에서 온 친구들도 보통 방해(Distraction)가 된다며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덴마크는 학생 전부가 노트북 사용)


    그렇다면 장점은? 가장 큰 장점은 실제 사례를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 수업의 이론을 배우면 곧바로 유튜브로 관련 광고를 확인한다. 혹시라도 교수의 설명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바로 구글링 해서 자료를 찾고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떠한가. 일부 중년/노(老) 교수들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서 수업 자료를 준비하는데 조교를 대동한다거나, '반장'이라는 명목으로 학생을 뽑아 컴퓨터를 대신 다루도록 다. 일부 교수들은 아예 노트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는 이유 불문하고 소탐대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험'에서 더욱 그렇다.


    덴마크에서는 Oral test를 보거나, 노트북으로 제한 시간 내에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거나, 기간 내에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게 보통 시험의 형태다. 교실에 모여 시험지에 무언가를 암기하여 적어내는 시험 형식은 드문 편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 바로 실용성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며 얘기한다. "도대체 대학에서 무엇을 배운 거지? 직장에서 쓸만한 지식은 하나도 없었다." 등의 하소연을 한다. 이론과 실무의 차이가 어마무시할지언정, 최소한 '일'을 하는 방식만큼은 현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모든 일을 컴퓨터를 통해서 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 대학에서는 아직까지도 적용(Applying)이 아니라 암기 위주가 일반적인 시험 형태가 주를 이룬다. 즉, 덴마크 행복 교육의 첫 번째 비결은 이론과 실제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실용성'에 있다.


'격의 없는' 교육 : Teachers need 'real' feedback

    덴마크 행복 교육의 두 번째 비결은 '솔직한 평가'에 있다고 느낀다. 보통 한국의 대학은 종강 즈음에 강의 평가를 하고, 자신의 학기 성적을 일찍 열람하기 위해서 '강의 평가'를 하도록 독려한다. 이때 일부 학생들은 혹시라도 교수들이  강의 평가 내역을 확인하는 것은 아닌지, 전체 강의평가 점수가 낮게 나왔을 때, 학점이 전체적으로 낮게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또는 강의 평가를 해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겪었기에 학생들은 '대체로 좋다'. 또는 '매우 좋다'의 기둥을 세우고 만다.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빌 게이츠는 [Teachers need real feedback]이라는  Tedtalks Education 강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Until recently, over 98 percent of teachers just got one word of feedback. Satisfactory."(http://go.ted.com/pcT6uQ) 강연의 주제는 선생님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학생들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말이다.

       덴마크 대학의 강의 평가 시스템은 대체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중간 평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강의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중간에 강의 평가를 하고, 그 평가 결과를 같이 공유하고 어떻게 개선할지 학생과 교수가 교실에서 자유롭게 얘기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덴마크에서는 시험을 볼 때 담당 교수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전문가를 초청한다.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실제로 Oral test를 보는 동안 담당 교수와 처음 보는 외부 전문가가 번갈아 질문하고 같이 평가를 했다.


    또한 덴마크의 경우 10ECTS(한국에서는 보통 6학점)짜리 수업은 보통 'Lecture' 'Tutorial' 코스로 나뉜다. 강의와 실습이 이원화된 체계로서, 만약 강의가 너무 이론만 다룬다거나, 실습 코스가 강의에 반복이라고 느껴진다면, 교수끼리 서로 피드백을 교환해서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말하지 않아도 머릿 속에  떠오르는 그 느낌이 곧 답이다.


형식적인 피드백은 역설적으로 체계적인 피드백 '형식'이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모순과 비극이다. 세계 최고의 혁신가 중  한 명인 일론 머스크도 피드백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Actively seek out and listen carefully to negative feedback."  변화는 긍정성이 아니라 부정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항상 부정적인 피드백에 주의를 '적극적'으로 기울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 교육에는 '결격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이 맞고 격의 없는 '사유' 능력 말이다. 이는 학생과 선생 그리고 부모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문' 교육이 필요하다. 인간이 가진 각자의 모양을 존중하는 교육이 그것이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각자의 모양을 닳게 만들어 사회가 요구하는 '원만한' 원들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결격의 교육은 테트리스와 같다. 테트리스에 왜 원이 없는 줄 아는가? 여러 방향으로 돌려봐도 각각의 아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의 변화만으로  한국에서 과연 '결격'의 교육이 가능해질까? 학생들이 학생부와 추천서를 잘 받기 위해 선생(님)들에게 애교를 아교로 삼는 곳에서  '아귀'가 맞는 교육은 가능할까? 대답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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