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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Dec 02. 2017

북한은 한국 남자의 행복을 어떻게 잠식하는가

15. 두 개의 한국 : 북한, 불행의 또 다른 이름

"Where are you from? I am from South Korea not North. 영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문장 중 하나. 하지만 답변이 조금 달라 보인다. 왜 그냥 Korea가 아니라, South와 North를 굳이 가려가며 대답했을까?" 

     


    외국인을 처음 만나면 당연히 국적을 말하며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필자는 저 말이 귀찮음을 넘어 짜증 날 때가 종종 있었다. 수업에서 만나 얼굴만 아는 친구를 파티에서 종종 만난 미국 친구는 매번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술에 절은 표정으로 "By the way, are you seriously from south not north?"라고 되물었다. 그럼 나는 "Don't be cheesy."라고 답하며 어색한 대화를 마무리했다. 헬스장에서도 버스 정류장에서도 이상하게 자주 마주치는 이 친구는 맨 정신일 때도 이렇게 물어봐서 불쾌하기도 했다. 그 친구도 나와 어색하기 때문에 유머를 던진 건 아닐까 고민하다가 덴마크에서도 북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너무 안쓰러웠다. 


대한민국 남자 교환학생에게 북한이란?


  필자는 덴마크 Aarhus BSS 2017 가을학기의 유일한 한국 남자다. 자기소개를 할 때면 그들은 처음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냐하면 25살에 (한국 기준 26) 학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부연 설명을 한다. "Because of mandatory military service for 2 years." 그럼 자연스럽게 2년 동안 뭘 배우냐는 질문에, 사격과 화생방, 응급처치 등을 배운다고 하지만, 한국의 모든 남자들은 병역의 의무가 있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덧붙여 준다. 이후에 따라오는 질문은 보통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류의 것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길래, 따로 답변을 준비했을 정도였다.  


     한국의 언론들은 K-POP의 인기를 얘기하지만, (북)유럽 친구들의 절대다수는 K-POP이 뭔지도 모른다. 혹시 케밥(Kebab) 아니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모두들 북한은 알고 있다. 거실에서 CNN이나 BBC 뉴스를 볼 때마다 북한 소식을 접하는 나는, 이번에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했다는 외국인 친구의 친절한 업데이트까지 더해질 때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북한 소식에 노출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국가가 부르면 충성을 다하고 20대라는 청춘의 시간 중 무려 2년을 애국심 하나만으로 버텨낸 사람들 아닌가. 북한이야 이미 삶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덴마크에 와서 정말로 북한이라는 존재 자체가 싫어진 계기가 있었다. 그건 바로 23살의 덴마크인 다니엘이 석사 논문을 쓰고 있다고 말한 순간이었다. 여러분이 만약 한국 남자인데, 교환학생을 가려고 한 번이라도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했으리라. '최대한 어릴 때 외국에 나가서, 영어 실력도 키우고 시야를 넓히고 싶다. 근데 아직 군대 안 갔다 왔는데. 교환학생 가서 실력 키워도 군대 가면 다 까먹을 텐데 뭐…'


    이런 고민을 한 친구들 중 다수는 군대를 전역한 이후, 현실의 압박감에 굴복한 나머지 그냥 학교를 다니거나, 장기간 시험을 준비하다가 그냥 졸업하게 된다. 혹자는 자신의 착실함과 선택의 문제이지, 군대 때문에 교환학생을 가기 어렵다는 게 말이 되냐며 강한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어차피 대한민국 남자 똑같이 군대 가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일리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은 한국 남자가 오로지 한국 사회에서만 경쟁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교환학생으로서 정말로 억울했던 순간은 인종차별 당할 때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한국 남자만 거의 유일하게 2년 뒤쳐진다는 사실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남자들은 사회에서 분리된 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이동과 통신의 자유를 제한 받고, 최저시급보다 못한 급여를 받으며 한국식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사회와 격리된 채 지내는 게 정상적인 한국 남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사회화 과정이 되는 모순은 오히려 통과의례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합리화된 지 오래다. 대학 생활에서 가장 큰 의미와 재미가 있는 교환학생 경험을 하지 못한 채. 한국 남자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2년 뒤진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이 모든 현상의 원흉인 북한은 한국 남자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을 넘어 한국인 전체의 행복을 잠식하고 있다.


북한은 어떻게 한국인의 행복을 잠식하는가

     통일은 한국 정치 나아가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주요 이슈 중 하나로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행복 감지 영역이다.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Korea: The politics of vortex)라는 표현처럼 북한 이슈는 우리 행복을 모두 휘감아버린다는 점에서 북한 나아가 통일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2016년 국가보훈처와 한국정치학회에서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아래 그림 참고), 20대의 북한 정권 신뢰도가 전체 연령 중에서 가장 낮다. 통계 수치에 대한 좋고 나쁨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국민의 약 75% 정도는 북한 정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통시적 관점에서도 북한을 믿지 않고, 적대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경향성을 보여준다.

<한국사회 갈등 요인과 통일에 대한 유권자 인식조사 교차분석>

     2017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다. 해당 보고서의 개괄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둘째,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 역시 유의미한 증가 추세에 있다. 셋째, 사회집단(성별, 지역, 세대, 계층, 이념, 당파적 성향)에 따른 통일의식의 분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특이한 점은 과거와 달리 통일 의식의 양극화는 이념 갈등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당파적 입장(정당 일체감)에 기인한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북한 이슈는 한국 사회의 갈등 사슬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북한은 한국인의 행복 결정 요인에 내재된 것처럼 보인다.



Not embedding to us, Empathy to us

    사람마다 행복 원천과 회로가 다르겠지만, 필자의 행복은 정치 상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양극단의 종북 메카시즘과 종북 발언으로 서로를 물고 뜯을 때면, 진정한 동족상잔은 남남갈등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주입하려고만 할 뿐,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부작용에는 눈이 멀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 생각도 변해야 한다. 현재 다수의 한국인들은 '통일에 대한 열망과 효용성이 약화되고 통일을 보다 실용주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대북정책과 탈북민 지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증가하고 있다.'(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7) 북한 정부와 주민은 당연히 별개다. 그러나 그들이 인권 유린의 비극을 겪고 있다고 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한민족이라는 구시대적 민족주의 개념은 사람들의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다. 이는 매해 통일의식조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의 감정은 같은 대한민국 사람끼리 서로 물고 뜯는 비극에 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극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오르후스 지역에 사는 한인들끼리 간단한 저녁 식사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곳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온 20살 남학생도 있었다. 덴마크 음악 학교 입학을 위해 꿈을 찾아 나선 그 소년은 군대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내 질문에 "저는 몸이 안 좋아서 계속 재검 받다가 아마 면제받을 수 있을 거예요" 라며 웃으며 답했다. "군 문제가 해결되면 더 좋은 비자도 받을 수 있겠죠." 라는 웃픈 부연 설명과 함께.


    몸이 건강하지 않아서 행복할 수 있는 한국 남자들. 한국 남자에게 북한이라는 존재는 인생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는 '2년'이라는 군 복무 기간만 눈에 보이겠지만 우리 인생은 하나의 서사다. 이야기란 말이다. 이야기에는 맥락이 중요하다. 쉼표 일지, 물음표 일지, 느낌표 일지, 역경의 역접일지, 어쩌면 마침표일지도 모르는 군 복무 경험에 우리 사회의 감정이입이 필요하다. 


필자에게 감정이입은 사전적 의미와 조금 다르다. Em-path-y: 서로에게 감정의 길을 수놓는 것이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다만 이해의 길까지 차단한다면 그건 또 다른 38선이요, 우리 행복을 잠식하는 분계선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1.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6 통일의식조사(2017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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