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행복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 그리고 욜로(YOLO)
"I don't know why I don't see happiness in this town
Everyone I meet seems so uptight, wearing their frown
What good is living where dreams come true if nobody smiles
Everyone's chasing the latest star, the latest style."
영화 비긴어게인의 OST 곡 중 하나인 <Higher place>의 첫 가사다. 이 영화를 혼자 영화관에서 본 이후 집으로 가지 않고, 자전거를 타러 갔었다. 햇살을 맞으며 이 노래가 주는 경쾌함과 바람에 취한 채 공기를 음미했었던 기억은 잔잔히 강렬했다. 그 이후로도 이 노래의 가사를 곱씹을 때마다, 짧은 문장이 주는 울림에 문득 하루하루를 반추하고는 하였다. "꿈을 이룬 곳에 있지만 아무도 웃고 있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러분은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웃었는가. "웃으면 복이 와요" 류의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기억 그리고 여러분의 기억 속 지하철, 버스, 직장, 학교에서 본 사람들의 표정의 다수는 무표정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인 덴마크에 오면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행복'해 보일 줄 알았다. 사람들이 살갑고, 친절하게 말도 먼저 걸어주고 그럴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잿빛 하늘과 무채색 일변도의 패션은 추운 날씨와 함께 덴마크 사람들도 차갑게 보이도록 만들었고, 이내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하였다. ‘평소에 아무 이유도 없이 웃고 다니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르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며 가사 하나에 대한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빈칸에 무엇을 넣겠는가? '보내다'라는 동사가 압도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능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빈칸문제는 앞뒤 문장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고 확실한 근거를 찾아낸 뒤에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류의 문제는 아니었다. 빈칸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있겠지만 '출제자가 원하는' 답은 잠시 후에 공개될 예정이다. 행복을 얘기한다면서 갑작스레 수능 문제 출제를 따라 하는 이유는 오늘의 주제인 '행복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에 대해 수험생이 가장 많이 고민하기 때문이다. "지금 잠들지 않고 더 공부하면 미래의 배우자가 바뀐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통제 삼아 지겨운 수능 공부를 해내고, 대학에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누구나 한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름만 바뀌었지 실상은 비슷하다. (물론 다른 점도 엄청나게 많다) 시험공부, 아르바이트, 대외활동, 공모전, 인턴, 취업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술과 함께 할 뿐이다. (뚜렷한 목표와 꿈이 있지 않은 일반적인 대학생의 모습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머리를 2년 동안이나 삭발하고 다녔고, 심지어 한 번에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여 10개월 동안 도서관을 다니며 독학재수를 했던 나였다. 미래의 나는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런데, 만약 내가 매일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던 시간들을 공부에 투자하지 않고, 그때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면? 나는 '지금의' 나보다 행복했을까? 답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내 답은 점점 부정적으로 변했다. 생각해보자. 최근엔 취업시장에서 학벌 블라인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하지만, 학벌에 따른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서울이 아닌 곳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당연히 카이스트, 포항공대, 지방 의대 등 특별한 경우는 제외한 일반적인 이야기다.) 그들의 기회는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 교통과 정보 접근성, 인적 네트워크 등등. 그래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좋은 대학'으로 보험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가려 노력했고, 그곳에서도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채…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를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필자는 스마트폰으로 구글 지도를 켠다. 이 말도 안 되는 논리의 핵심은 우리의 목적지는 내 위치(My location)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2030 세대들이 욜로 라이프를 살고자 하는 기저에는 두 눈으로 밖이 아닌 안을 보았고, 두 팔로 만져 보고 싶었고, 두 다리로 걷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었다고 믿는다. 즉, 누리지 못했던 현재의 행복을 쟁취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때로는 빚까지 내며 여행 한번 가고자 한다.
하지만 욜로족의 문제는 오늘의 주제로 회귀한다. "그다음은 어떻게 살 건데?" 욜로족의 행복은 '나'를 향하지만 동시에 '소비'를 향한다. 즉,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먹고 살만큼만 벌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건데"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먹고 살만큼 벌고, 하고 싶은 일까지 하며 살려면 꽤나 많은 돈이 소요되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욜로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화끈하게, 내 맘대로 살아보자!"에서 자칫하면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화끈하게, 한 번에 훅!"가는 라이프 스타일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정답은 ‘쌓는다’. 물론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일상을 쌓는다고 표현할 땐, 축적의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 행복의 현재가치와 미래가치를 저울질한 후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사람은 후회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현재의 선택이 미래까지 연속선상에서 이뤄진다면 후회는 조금 덜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를 쌓아가는 것은 곧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행복 글쓰기’를 예로 들어보겠다. 1000만 원 이상 소요되는 교환학생의 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예쁜 건물 보고 사진 찍고, 추억거리 만들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행복을 위한 선택이 되도록 만들고 싶었다.
또한, 글을 계속 써나가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쌓일수록 실력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다만, 수험생의 경우 일상을 쌓기 힘들 것이다. "너의 수능 공부를 미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하렴" 이런 태평한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을 하기를 권하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필자가 학창 시절에 못해봤기 때문이다.
첫째, 어릴 때 풋풋한 연애 해보기. 사람간의 관계도 연습이 필요하다. 이성 간의 관계는 더더욱 그렇다. 대신 성적이 떨어지면 본인 책임이다. 둘째, 수험생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로 취미를 갖는다. 이건 연령 상관없이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다음은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관심분야가 많을수록 행복해질 기회는 그만큼 많아지고, 불행의 여신의 손에 휘둘릴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우리가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필수불가결하다면, 그때의 불안, 불행,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복 채널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오로지 관심 분야가 하나인데, 그 분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회복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 채널의 다양화는 일상을 쌓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다.
행복의 현재 가치에 중점을 두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과대평가된 행복이 미래 가치를 잠식한다면 자기자본은 제로로 수렴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현재를 즐기라는 단순한 외침은 공허하다. 위험하다. 왜냐하면 미래는 미래(美來), 즉 아름다운 내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