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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Nov 16. 2017

덴마크,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의 우울한 역설

11. 행복의 향연과 우울증의 만연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덴마크에 도착했던 첫날, 내가 진행했던 행복 인터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인터뷰 대상은 20살의 첼레와 루나였다. 그들은 한국의 K-pop 팬이었기에 인터뷰 성사가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첼레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루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What is your own definition of happiness?". 돌아온 답변은 한국과 덴마크 거리만큼이나 예상을 빗나갔다.  "Well, I am sorry but... I can't answer your question because l have a depression at this moment."



Part.1) 덴마크, 행복의 향연과 만연한 우울증의 국가

    덴마크의 우울증을 살펴보기 앞서,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단어는 하나지만 각자 인지하는 뜻이 제각각인 용어를 영어에서는 umbrella term이라고 하는데. 우울증도 그 우산 속에 있다.  우리는 그냥 막연하게 우울증이란 '슬픈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 표현 Depression을 어근 별로 분석하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한층 더 쉽다. DEPRESS는 문자 그대로 PRESS DOWN 즉, 아래로 짓눌리는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한 우울증은 다음과 같다.

Depression is a common mental disorder, characterized by persistent sadness and a loss of interest in activities that you normally enjoy, accompanied by an inability to carry out daily activities, for at least two weeks.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항우울제(Prozac)를 복용하고 처방하는 국가 중 하나다. 2014년 기준 OECD 통계에 따르면 덴마크 사람 1000명 중 85명이 항우울제를 사용한다. 한국은 가장 순위가 낮은 국가로 1000명 당 13명 수준. 덴마크의 행복 역설은 왜 발생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항우울제 복용자 수치를 기록하게 되었을까?

OECD 항우울제 복용자 통계, Business Insider 재편집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1) 첫째, 덴마크에서는 Winter depression이라는 계절성 우울증이 존재한다. 겨울이 되면 급격히 부족해지는 일조량으로 인해 우울증 환자의 절대적 수치가 높아진다. 실제로 겨울에 교환학생을 간 나는 오후 4시면 이미 도시가 어두컴컴해질 정도로 짧은 일조 시간에 당황했던 적이 많다. (2)둘째, OECD에 따르면, 덴마크의 선진 복지시스템이 역설적으로 높은 순위의 우울증 통계를 만들어냈다. 가디언지는 1969년부터 정신과 진료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치화한 덴마크 시스템이 통계 누락을 줄여 항우울제 복용자가 타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Since 1969, for every person living in Denmark the register has logged admissions to psychiatric hospitals, … (중략) … As such, it provides a comprehensive and uniquely detailed picture of treatment for psychological problems in the country. - The Guardian

       또한 많은 통계들을 보면 선진국일수록 항우울제 복용자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두 가지 원인이 존재한다. 첫째,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보다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정신과 상담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약을 처방 받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는 것이다. 둘째, 낮은 접근성, 즉 정신과 진료의 문턱이 문제다. 정신과 전문의의 숫자와 접근 용이성,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환자들에게 필요한 치료가 도달하기 힘들다는 게 OECD 분석이다.

    

    이번 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우울증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이다. 의식의 자유로움을 간단히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인드다.  덴마크인들은 우울증에 관한 사회적 낙인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우울증을 금기시 하지 않으려 한다(-고 느낀다). 감기처럼 흔히 걸릴 수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하듯 우울증을 음지로 몰지 않고 양지로 꺼내어 빛을 받도록 한다.  덴마크 행복연구소장인 Meik Wiking의 강연(The dark side of happiness at TEDx Copenhagen)이 한 가지 사례다. (https://youtu.be/PbtzY-8IFTQ)


Part.2) 한국인 교환학생이 우울증을 겪는다면?

    덴마크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지금까지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은 '감정 기복'이다. 출석체크 없고, 중간고사도 없고, 학기 중에 일주일 방학도 있고(역시 북유럽...), PASS만 받으면 학점이 인정되는 부담감 제로의 환경에서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마치 연간 자유이용권이라도 구매한 듯, 꽤나 자주 겪고 있는 감정의 난류(turbulence)는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설마 내가 우울증...?'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왜 나는 스스로 저런 질문을 했을까? 질문은 또 사실을 묻는다. 위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항우울제를 적게 쓰는 국가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현상을 Business Insider는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인은 우울증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여긴다."

 In South Korea, where antidepressant use is the lowest among the countries analyzed, the suicide rate is the highest in the developed world. Koreans are much likelier than Americans to see mental illness as a personal weakness, which means many never seek treatment.

    이러한 진단에 동의하는가? 여러분도 우울증을 나약함으로 여기고 있는가? 필자는 그렇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사물들이 "설마, 행복으로 글을 연재하는 네가 우울증이라고? 그건 너무 넌센스 아니야?" 라며 말을 걸고 있었다. 한참을 듣고 있던 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우울증을 나약함과 같다고 생각했을까? 그게 뭐가 문제인데?'라며.


     덴마크 출국 전 행복 인터뷰를 했던 친구 말이 떠올랐다.  "캐나다에서는 앰뷸런스가 지나가면 우리나라처럼 '아 무슨 일 났나 보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고 누군가를 도우러 가고 있다고 표현하더라고".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많은 한국인들이 우울증을 사회적 낙인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출발점이 문제를 문제화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타인에게 본인 문제를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이 극대화되면 우울한 자아 속에서 익사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감정의 과잉 속에서 다행히 헤엄쳐 나왔다. 감정을 수용함으로써 말이다. 보통 고통 수용의 5단계는 다음의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렇게 단계별 상태를 반추하고 나니, 내 감정이 무엇인지 보였다. 취업 준비하지 않고 외국에서 행복 글쓰기나 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 현실과 타협하려는 자신에 대한 불만,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무기력함이 본인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인지했다면, 그다음은? '인정'

    필자는 아직도 우울증이 개인의 나약함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도시화, 개인화 풍조가 심화될수록 우울증은 더욱 만연한 질병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문제를 발견했다면 완벽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결책은 이렇다. 우울증이라는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일은 우울증이 내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스스로에게 느낄 실망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감정을 인정할 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인정(認定)은 옳다고 믿고 정하는 일을 뜻한다. 무엇을 옳다고 정할 것인가. 우울증은 일종의 신호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변화가 긍정성이 아니라 부정성에서 비롯된다는 속성을 알고 있다면, 우울증은 더 나은 나를 위한 옳은 신호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도 약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https://brunch.co.kr/@happinessdanish/49 - [행복과 우울증은 공존할 수 있을까]에서 계속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처럼 둥근 사람이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모난 사람이어야 된다고 믿는다. 원과 달리 톱니바퀴처럼 모난 곳도 있어야 서로의 홈에 맞물려 동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약점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참고사이트]

1. http://www.politifact.com/truth-o-meter/statements/2015/oct/23/viral-image/internet-graphic-says-suicide-rate-much-higher-den/

 2. http://www.who.int/mental_health/management/depression/en/

3. http://www.businessinsider.com/countries-largest-antidepressant-drug-users-2016-2?r=US&IR=T&IR=T

4.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international-psychogeriatrics/article/cultural-differences-in-depressionrelated-stigma-in-latelife-a-comparison-between-the-usa-russia-and-south-korea/C9CEABFB5766F1665AD46EB9C1701C8D

5.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blog/2014/may/14/mental-illness-happiest-country-denmark

6. https://www.opposingviews.com/i/society/worlds-happiest-countries-take-most-antidepress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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