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Dec 26. 2017

행복과 우울증은 공존할 수 있을까

18. 행복의 정복과 우울증의 전복

"살아 있음이 곧 죽음이 되고
죽음으로써 평생을 살아가는 모순과 역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행복과 우울증은 공존할 수 있을까? 의문은 이내 의무로 바뀌었다. 행복과 우울증은 공존해야 한다. 다만, 검은색과 흰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듯 우울증의 전염성이 너무나 강해, 이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대부분 '행복해지는 몇 가지 방법'류의 책에 거부감이 강할 것이다. 본인도 그렇다. 별 대단치도 않은 방법들을 나열하면서, 마치 글쓴이는 인생을 해탈한 듯 얘기하는 태도가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가 실제로 그랬는지, 독자인 내 시선이 삐딱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감사하기' 등의 당연해 보이는 말들을 당연하듯이 내뱉는 무책임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가 몰라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거나 감사하지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싶지만, 마주한 우울한 현실에, 살아온 관성에 치이다 보면 어느덧 감정은 가슴이 아니라 세상을 따르게 되어, 읽고 듣고 알게 되어도 실천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은 파편화되고 있다. SNS가 우리를 연결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그 연결은 나와 너의 만남인 우리가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내가 있는 무리만 늘렸다. 빈곤이 빈곤해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공허함만 커지는 역설의 과잉 상태에서 혼란을 느낀다. 이때, 빈곤과 과잉 사이의 빈틈을 우울증이 헤집고 들어온다. 우울증은 결핍의 감정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자아의 과잉이다.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은 자신밖에 없게 된다. 그 사람은 인생의 시점이 어딘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1인칭 주인공인지 관찰자인지 헷갈려 하다가 가장 쉬운 선택에 이끌려 버린다. 그들은 잠시나마, 어쩌면 영원히, 전지적 작가가 되어 자살을 통해 삶이라는 소설에 결론을 내버리기도 한다.


     글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쓰려고 하는, 앞으로 쓸지도 모를 모든 인생 작가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하나의 지침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행복을 정복해야 한다. 말은 거창하지만 내용은 평범할 것이다. 진리는 호들갑 떨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한 인생이 대부분 조용한 인생인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행복을 정복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한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물어보면 보통 여행의 모습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을 여행처럼 살려고 노력하지만, 노력이 일상이 될 뿐 일상이 여행이 되지는 않는다. 일상이 어떻게 여행이 될 수 있느냔 말이다. 돈이 없어서 또는 시간이 없어서 어쩌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우리는 일상에서 여행의 꿈을 꾸지만 꿈을 실현하며 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의 행복을 정복해야 한다.


    정복이란 무엇인가? 버트런드 러셀의 저서인 [행복의 정복] 영문 제목은 [The conquest of happiness]. 필자에게 정복이란 'Con(with)+Quest(ask)'이다. , 함께 행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행위 바로 행복의 정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 정복의 여정은 질문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질문은 ‘일상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단조롭다. 단조로움은 다시 말하면, 우리 삶에는 일정한 루틴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일상의 행복은 행복 루틴에 좌우된다. 이런 맥락에서 행복은 습관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 '행복 루틴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 것일까?'


    행복 루틴은 행복 채널의 다양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관심분야가 많을수록 행복해질 기회는 그만큼 많아지고, 불행의 여신의 손에 휘둘릴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번째로 해야  일은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 지를 적어보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적어야 한다. 그게 구체적인 계획의 시작이다. 막연하다고 느껴진다면, 학교에서 배웠던 과목들을 떠올려 보자.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체육, 미술 . 예를 들면, 국어에는 독서, 영어에는 미드 보기, 사회는 정치 평론, 음악은 콘서트 관람, 체육에는 운동, 미술 - 미술관 방문처럼 무엇을 중점적으로 할지 정한다. 이후 계획을 세분화한다. 계획은 계획으로 그쳐서는  되기 때문이다. 계획은 반드시 액션플랜이어야 한다.


우울증에 항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일  일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액션플랜을 강조했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많이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우리는 그냥 지친 사람이 되어있다. 무기력한 사람은  이유조차 무기력해진다. 이들에게 운동을 하라든지, 동호회에 가입하라는 등의 얘기는 무기력에 없는 힘까지 뺏어서 그들을 상처 주는 무기가 된다. 그래서 행복 정복을 위한 액션플랜에는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이 투입해야  인생 에너지 정도에 따라서 수동 - 정중동 - 능동 루틴으로 구분하였다.


① 수동: 나는 존재한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씻기다. 이유는 단순하다. 머리를 감으면 잠이 깨는 것과 같은 원리다. 씻기 전에는 학교 또는 회사 가기 싫다고 생각하다가도,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화장품을 얼굴에 바를 때면 '그래도 공부해야지, 돈 벌어야지, 오늘도 힘내자!'하며 스스로 생각의 전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샤워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 시간만큼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에 물을 묻힐 때만큼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본인을 사이버 공간에 전시하지 않고, 거울에 비친 민낯을 보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게 행복 시작의 출발점이다.


     씻은 후엔 밖으로 나가자. 감각이 살아있다면 모두가   있는 일이다. 필자는 아침과 저녁에 최소한  번씩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하늘을 본다. 태양과  그리고 별을 바라본다. 가끔은 하늘을 보며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바람이 나를 본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듯, 자연도 존재한다. 모든 존재의 울림을 깨닫는  중요하다. 무기력증이 우울증이 되는 순간은 자아의 소리가 귀를 멎게 하여 자아 속에서 익사하도록 만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세계관의 전부가 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부로 행복 채널을 열어놔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이자 어려운 방법이며, 중요한 루틴이다.


② 정중동: 고요한 가운데 움직인다.

     번째 방법은 단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동아리나 동호회에 가입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위에서 액션플랜을 흥미에 따라 구성해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혼자 헬스를 하는 것보다 단체 운동을 하거나 보면서 응원하는  훨씬 낫다. 본인의 경우, 계절별로 농구, 야구, 배구 현장 관람을 적어도 1번씩은 한다. 행복은 파도타기와 같다. 1단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했으면 2단계에서 타인의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을 잃기 쉽다. 그래서 정중동의 미덕이 필요한 것이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거리 공연이나 콘서트를 가서 아티스트와 관객의 호흡을 느껴본다. 미술이라면, 작품에게 말을 걸어보고, 작가의 의도를 상상해보며 스스로 큐레이터가 되어보도록 하자. 만화나 영화를 좋아한다면, 자신의 현실에 상상을 입혀 일상에 변화라는 꽃을 키워보자. 러셀은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우리 인생의 모든 의미와 목적을 마음대로 주무를  있게 된다 역설했다. 정중동의 핵심은 고요한 중심에 있지 않다. 움직인다는 동사에 있다. 잊지 말자. 인생은 동사.


③ 능동, 적극적으로 생산하다.


          "당신이 먹은 음식으로 뭘 만드는지 말해 봐요.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리다." 라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말했다. 잠시 생각해보자. 오늘 하루 먹은 음식으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만약 1,2단계까지 잘 수행했는데도 내 인생에서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항상 새해를 앞두고 하는 의식이 있었다.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노트에 적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 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고 나아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적어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성장하는 삶. 이때 성장 앞에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다. 변증법적 성장을 하는 사람. 변증법의 핵심 원리는 정반합(正反)에 있다. 우리의 성장, 인생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합(合)


    생산은 합을 늘리는 데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왔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말이다. 이 질문 역시 자신의 흥미에 우선 근거해야 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 운동부 생활을 많이 해서 기초 독서량이 부족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세계관이 넓어지며 인생의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쁨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고, 독서 리뷰를 남기기 시작했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필자는 정치평론 대회에 글을 내기도 했다. 영어를 잘하고 싶지만 학원에 쓰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여 혼자 공부하며 터득한 방법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본인이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의미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의미는 규정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므로 적어도 자신의 행위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들의 합이 곧 인생이 의미로 쌓이게 된다. 영어 단어에서 다의어가 중요하듯, 인생의 의미를 다양화할 수 있을 때 인생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불행하지 않은 우울증이 되기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없는 것들이 있다. 심각한 우울증의 늪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글은 닿을  없다. 러셀은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 앞에 펼쳐진 세계의 여러 가지 볼거리에서 눈을 돌려, 공허한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본다라고 지적했다. 필자는 이전 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증상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우울증 자체를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문제화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말이다.


     헌데, 이런 사람들도 밖으로 나올 때가 있다.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할 때다. '기분 좋아지는 법,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법, 행복해지는 법' 등을 검색하며 그들은 때때로 포털 사이트나 커뮤니티에 어떤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고민과 증상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여기까지는 좋다. 아니, 사실은 좋지 않은 측면이 크다.


    한국에서 우울증을 악화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건전한 커뮤니티의 붕괴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얘기하기 전에 주로 무엇을 할까? 아마도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먼저 찾아보고 사람들의 생각을 댓글로 확인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포털사이트에 만연한 비이성적인 댓글들은 기본적으로 특정 커뮤니티에서 생산된 선동과 혐오의 언어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누구나 이용하는 공간에 극단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왜곡시킨다. 마치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위험한 사실은 극단과 혐오의 언어가 우울증 환자의 내재된 부정성과 만났을 때, 그들의 생각은 정처를 잃은 채 불행의 길로 좌초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커뮤니티를 복원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이번 글이 여러분에게 울림을 주었다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공유함으로써 공감으로 따뜻한 커뮤니티를 조금씩 지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일상이 행복한 인생은 음악과 같다. 여러 마디를 이어 붙여 하나의 멜로디를 만든다고 할 때, 평생 같은 화음으로만 연주하면 인생이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우울증을 인생의 템포를 조절하는 안단테(Andante)라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행복을 연주해보자.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