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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Nov 15. 2020

[밑줄독서] 이병률 - 혼자가 혼자에게

28. 외로움을 넘어 고독의 터널을 관통한다면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밤도 시간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건다. 한 문장으로부터 비롯된 감정에 취하는 것은 이제는 옆에 있는 맥주 때문이라고 생각하련다.


작가처럼 여행은 혼자 가야만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했으며, 혼자이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 아니냐며, 혼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인생의 재미를 찾을 수나 있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건 어느새 재즈와 와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소리에 기적을 바라는 마음처럼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문장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다. 이왕이면 숙소는 깔끔한 게스트하우스였으면 좋겠다. 파티를 빙자한 헌팅 목적의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구도자로서 혼자 온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스태프들이 레크리에이션 강사처럼 여행객들의 짝짓기를 돕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안고 온 사람들의 쉼터이자 인생의 우연한 순간을 함께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도담 게스트하우스에서는 혼자 온 남자 5명이서 같은 방을 쓰게 됐다. 각자 사 온 음식을 하나씩 모아 인생 얘기를 했다. 어떤 이는 20대의 끝에서 바이크로 전국일주를, 국가를 지키는 서른 살의 청년은 올해만 세 번째 방문이란다. 또 어떤 이는 40대의 시작점에서 전국일주를, 마지막에 온 친구는 알고 보니 전 회사 동료였다. 우리 모두 제각기 달랐지만 혼자라는 공통점으로 서로의 인생을 응원했다. 따로 또 같이, 하루만 보고 헤어질 사이임을 알기에 더 진솔할 수 있는 신비로운 순간은 오직 혼자일 때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슬픔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슬픔을 알더라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또 어딘가에는 슬쩍이라도 칠칠맞지 못하게 슬픔을 묻힌 사람이면 좋겠다.
첫눈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원래 상태대로 돌려지고 싶은 어쩌면 회귀의 욕망... 사람들은 눈을 기다리며 기뻐할 준비와 슬퍼할 채비를 동시에 하고 있다. 첫눈이 온다는 건, 그 첫눈을 밟으며 당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아름다운 가능성일 테니까.
세상 흔한 것을 갖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나만 할 수 있고, 나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은 오직 혼자여야 가능하다.
색이 짙지도 않고 감정이 치열하지도 않은 채로 사랑하는 상태를 그들은 사랑이라 한다. 이 또한 시대의 색깔일까. (중략) 허전한 공백 상태를 못 견디는 세대의 특성이 시대의 물살을 맹물 같은 사랑으로나마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을수록 우리에게 주어진 새장의 면적과 시간의 덩어리는 점점 좁고 작아져만 간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몇 번이나 사랑을 한다고 사랑 앞에서 사랑을 참아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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