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에필로그, 잊기 위해 쓰는 마지막 이야기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다면
자신의 감정이 제멋대로 날뛰지 않도록
어떻게든 구속할 필요가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구름을 넘어가는 해가 더 밝게 빛나 보이듯 이제는 그리움을 넘어 다시 빛날 수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마음먹는 건 어렵지 않았다. 포기하는 게 너무나 어려웠을 뿐.
읽히지 못하는 글은 생명력이 없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썼다. 나의 독자는 오직 한 명이었다. 다만 너는 평생 이 글을 볼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은 너에게 쓰는 글이었지만 언제나 독백이었다. 이제는 독백을 마치려 한다. 이 글의 목적이 다 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기에.
[생각을 그리다, 그리고 글이다] 여기에 일기장 같은 상념들을 뱉어냈던 이유는 너를 잊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이 유일하게 나를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너로 인해 혼란한 내가 너를 생각하며 쓰는 글로 안정을 찾는 아이러니를 지금에서야 인정할 수 있게 됐다.
너와 헤어진 이후로 혼자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이병률 작가의 말처럼,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 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하고 싶어 진다'는 이 문장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항상 글을 썼다. '한꺼번에 다 잊으려고 하지 말라고. 그러기엔 힘이 든다고, 힘이 들면 살 수가 없다고 '라는 작가의 말처럼 3년 동안 정말 지독히도 네가 생각날 때, 이 글을 썼다.
매 순간 네가 생각났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잠이 채 덜 깬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에서, 야근으로 녹초가 되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야 할 그 순간 네가 생각날 때, 정말 어찌할 줄 몰라 미칠 것만 같았다. 미치도록 날뛰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어 쓰기 시작했다. 생각을 그리면, 감정을 따라가면 그 끝을 마주하면 멈출 수 있을 줄 알았다.
너를 그렸기에 글이 되었고 글을 쓰다 보면 너와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잊기 위해 썼다고 했지만 사실 다시 같이 있고 싶어 쓴 글이기도 했다. 글의 목적이 두 개가 되니 방향성을 잃은 감정은 고뇌가 되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만 했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유토피아를 찾는 것처럼.
씨앗처럼 정지했던 시간을 이제는 멈춰야겠지.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겠지. 나만의 헤테로토피아를 찾는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