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D ONE Mar 25. 2018

세금의 양만큼 행복이 늘어날 수 있을까

24. 소득의 절반이 세금인 나라, 덴마크의 행복 정치

"비가 억수로 내리던 어느 날, 노숙자처럼 보이는 사람과 같이 버스에 올라탔다. 기본요금 약 4000원. 마을버스 가격의 4배 수준이었다. 무임승차 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티켓 판매기에 동전을 넣고 당당히 자리에 앉는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는."


   Welfare, 복지로 해석되는 이 단어의 어원을 따지면 well과 fare의 합성어다. 버스 요금(Fare)을 잘 냈던 노숙자의 잔상이 한국에 온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때 상황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덴마크를 떠나 유럽 여행을 했을 때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꼈다. 지불 용의(willingness to pay)가 높은 여행객의 자비로움를 기대하는 노숙자들은 구글 평점이 높은 곳일수록 그 수가 많았다.


    한국의 복지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식어다. '선별'과 '보편'. 이 중 절대선은 없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만, 그 인간이 사는 세상은 '한정된’ 자원을 현실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위치가 달랐다.  덴마크 사람들은 노후 걱정 없이 현재 번 돈을 여행에 소비한다. 한국 사람들에겐 젊을 때 벌고, 저축도 하면서 노후대비를 미리 하는 것이 일상이다. 일상의 차이가 일생의 변화를 준다. 운 좋게도 필자는 교환학생 경험을 통해 덴마크를 느꼈다. 생각의 평형추는 어쩌면 한국의 미래가 될 덴마크의 현실, 그리고 현실의 한국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진자 운동 중이다.


1. 세금, 금세 없어져 버리는 돈의 또 다른 이름

   여러분이 덴마크의 부자라고 가정해보자.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총소득 중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어떨까? 덴마크에서는 최대 총소득의 51%를 세금으로 걷어갈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은 과표 5억 원 초과구간에 42%의 명목 최고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부자는 총소득의 절반 이상을 절대 세금으로 낼 수 없다.

1) Under the Danish tax system, it is possible for a high-wage earner to pay up to 51.5% of their total income after gross tax, giving a total of 57% of total income.

2) In total, no person must pay more than 51.95% in national and municipal taxes combined.

    부자라는 극단적 예시로 덴마크의 높은 부담률을 강조하려는 건 아니다. 아래 통계에 따르면, 덴마크 국가 전체의 세금이 전체 GDP에 45.9%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은 26.3%로 25.5%의 미국보다 약간 높았다.

https://www.forbes.com/sites_ 2017/11/29/the-countries-most-reliant-on-tax-revenue infographic

    위 데이터를 통해 한국의 세율이 낮기 때문에 복지국가 또는 선진국이 되고 있지 못함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덴마크는 880만 원 이상 9.400만원 이하의 계층들에게 41%의 세율을 공평하게 부과하고 있다. 형평을 주장하며, 동일 과표 내에 15%, 24%, 35%의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2013년 조세재정연구원의 주요국 조세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880만원부터 9400만원 이상의 과표 구간에 적용되는 소득세율은 36%였다. 즉, 덴마크의 세율은 5년 내에 5%P나 오른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 세율 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세율도 5%P 오른다고 한다면, 지금처럼 열렬히 세금 인상을 주장할 수 있을까?  필자가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 인생 교훈이 있다면, 을은 갑을 관계를 없애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갑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금 문제는 필연적으로 평등이라는 가치와 이어질 수밖에 없다.


2. 덴마크, 세계에서 가장 국정 운영을 잘하는 나라

    돈 앞에서 사람은 평등하다. 외국에서 잠깐 살아보기도, 여행을 하기도, 다시 한국에 와서 살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서구 사회가, 제국주의 시대에 악행을 저지르고 지금까지도 위선적인 태도로 인종차별을 행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진정한 평등은 무엇인가 생각해볼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 인류가 진실로 평등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돈 앞에서'라는 전제가 있을 때, 첫 문장은 참인 명제가 되었다.


    세금 문제는 결국 평등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했다. 혹자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등을 정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만 평등이라는 추상적이고 정성적인 가치에 기준을 정하는 행위에는 이미 주관이 개입된다. 그래서 세금 문제는 필연적으로 정치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객관과 주관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인 정부, 의회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덴마크는 상당히 흥미로운 국가다. 2018년,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3위 (2012 - 2016년 5년 연속 1위, 2017년 2위), 세계에서 법치주의가 잘 작동하는 국가, 반부패 국가 지수 2위, 그리고 국정운영을 가장 잘하는 국가로 선정되었다. 국정 운영 지수는 법치주의지수, 국정관리지수, 사회발전지수를 종합해 산출한다.

       이런 통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결국 고(高)세율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세금과 복지 혜택의 선순환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필자가 겪은 덴마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뚝뚝했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만큼은 여유 넘치는 인간상 그 자체였다. 언젠가 우리도 그들처럼 살 수 있을까?


3. Hell 조선이 Hella 조선이 되기 위해서는

   Hella는 비속어인데, 좋은 느낌을 과장하는 표현이다. 우리말로 '완전, ㅈ나' 의 용례와 비슷하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좋다. 특히, 외국에 나가 스마트폰은 삼성, TV는 엘지, 자동차는 현대라는 삼연타석 홈런을 맞을 때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요즘 말로, ‘국뽕’에 취했다. 그러다가도 한국의 현실을 다시 떠올리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았다.


    Hell과 Hella는 한 끗 차이다.  끗발은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자조적 헬조선이 자존적 헬라 조선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1인칭 시점의 자아를 찾아야 한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으로서 덴마크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바로 학생들의 태도다. 논쟁적인 태도의 부재는 개인을 각자의 삶에서 관객으로 만든다. 객관이라는 등 뒤에 숨어서 아무런 가치 판단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객관을 뒤집은 관객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논쟁적 태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균형 잡힌 사고를 하기 위해서다. 다들 한 번씩은 토론을 준비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반박과 논리를 조사하게 되고, 재반박 요소를 찾는 과정을 거친다. 필자의 예를 들어보면, 덴마크 교환학생 비자 발급을 위해 약 100만 원의 돈을 지출했다. 비쌌지만, 이 금액에는 치과치료를 제외한 무상의료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상의료를 자신이 원하는 때에 바로 받을 수 없다. 위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진료를 받기 위해 인터넷에 신청하고, 지역 담당 의사와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의료 서비스는 어떠할까? 자타공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토론하듯이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한다. 현상에는 언제나 명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문재인 정부의 비급여 항목 보장성 확대에 따른 의료수가 문제에 왜 의사들이 반발하는지 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민주의의 대표 국가인 덴마크의 현 정부가 우파 연립 정부이자, 세금 부담률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있는 게 현실인 것처럼 말이다.  의료수가 이슈에 대한 찬반과 옳고 그름은 나중 문제다. 핵심은 국민으로서 항상 논쟁적 태도를 가져야 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언제라도 본인이 틀릴 수 있다는 사고의 겸손’이다.



    세금의 양만큼 행복이 늘어날 수 있을까. 답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질문은 대답보다 질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질문은 비판적 사고의 시작이다.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곧 행동이다. 사고와 행동이 모여 우리 삶의 의미망을 직조해낸다. 그 사회의 수준은 딱 그곳의 구성원들이 만들어낸 의미망의 크기와 같다. 모든 국가는 그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플라톤의 말처럼, 세금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균형 잡힌' 의식 향상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사이트

1. https://www.forbes.com/sites/niallmccarthy/2017/11/29/the-countries-most-reliant-on-tax-revenue-infographic/#32c80c593180

2. http://nakeddenmark.com/archives/9794

3. http://nakeddenmark.com/archives/9815

4. http://nakeddenmark.com/archives/9713

5. https://europa.eu/youreurope/citizens/work/taxes/income-taxes-abroad/denmark/index_en.htm

6. http://www.kipf.re.kr/storage/Publish/Attach/2014/03/%EC%A3%BC%EC%9A%94%EA%B5%AD%EC%9D%98%20%EC%A1%B0%EC%84%B8%EB%8F%99%ED%96%A5%202013%202%ED%98%B8_kipf_140307.pdf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