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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Dec 10. 2021

[밑줄긋기]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31. 12월에는 일을 2배로 잘하고 싶지만 현실은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일을 잘하고 싶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 자체는 짜증 그 자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일을 나는 잘하고 싶다. 우리 회사에서는 월급 루팡이 많다. 그들을 자르지 않는 것을 고용안정성으로 부른다라나.

"우리 회사는 참 좋아. 진짜 '폐급'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도 어떻게든 구제하려는 게 너무 좋지 않니?"


 말을 들은 나는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진다. 진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취업을 못하는구나. 위에서 적체현상이 발생하니까 돈은 돈대로 나가고 일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은퇴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회사가 망할 것 같지는 않고, 자신을 쫓아내지 않을 것 같으니 이런 말을 한다니 마음이 참으로 불편했다.


그래, 하지만 나도 결국에는 그것 때문에 이직한 거잖아? 되물으면서, 나조차도 똑같은 놈인데 누굴 욕하고 있는 건지 자기 혼란과 분열에 빠진다. 그것도 잠시, 월급 명세표를 보고 놀란다. 아 맞다. 생각보다 여기 돈 많이 주는 곳 아니었지? 그렇다고 일을 적게 하는 부서에 있는 것도 아니지? 근데 나는 왜 일을 잘하고 싶지? 일을 잘하면 결국 또 다른 일을 맡게 될 것이고 이건 악순환의 연속이 아닐까? - 하며 적정 수준에서 내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그 균형점에 대해 고민한다.


현재 시점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최소한 내부적으로 타 부서 이동을 위한 평판 형성이 될 만큼만 협조적이고 생산물을 창출하지만, 위급 상황에서 상급자가 나를 찾지 않을 정도로만 능력을 겉으로 티 내는 것 -이고 싶지만, 현실은 일을 닥치는 대로 처리하고 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싫어, 위드코로나를 맞아 다시 개방한 회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 - 라는 궁극의 자본주의가 내면화된 이 제목을 보고 있자니 밀려오는 슬픔도 잠시, 결국 나도 이 회사에 나를 팔았고, 그 대가가 부족하여 다른 방식으로도 나를 팔고 있는데, 이런 파는 행위를 기계적으로 반복했다는 생각에 책을 집게 됐다.


다만 집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를 펼치는 건 쉽지 않았다. 평소 자기계발류 서적에 대한 거부감이 첫 번째 이유였고, 당연한 말이 가득한 책 내용에 나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으며 세 번째로는 일 잘하는 사람의 글을 보고 내가 얼마나 일을 못하는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 참교육의 시간이 두려웠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생각으로 시작한 독서에서 얻은 문장들 일부를 소개하며 금요일 출근을 앞두며 잠을 청해본다.



피드백은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욱 긴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생각은 태어난 것과 자라난 곳이 다르며, 보통 태어나는 곳은 무의식과 욕망입니다.


상대방이 사용하는 연상 방식을 파악하면 전체 대화의 기준점을 잡기 쉬워진다.
거절을 할 땐 반드시 조건을 붙여서 거절하거나 역제안을 하도록 한다.
돈을 벌기로 했으면 나머지 가치는 잠시 양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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