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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an 31. 2021

[밑줄독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30.  WALK AND TALK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소로는 걷기에 걸리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했다. 문화와 도서관이 파놓은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이 다른 사람들의 문체로 가득 채워지기 때문이었다.

걷기의 신성함을 믿는다. 걸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쓰지만 다들 어쩜 그리도 바쁜지 자발적 좀비 자청하며 걷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걷기는 작가의 말처럼 인간의 가장 순수하며 영원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걸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걷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걷기만 하면 ‘순수한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고, 어린 시절을 만들어낸 삶의 소박한 즐거움도 재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걷기는 부담을 덜어주고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도록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그 ‘영원성’을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걷기 시작한다. 물론 걸으면서도 생각을 하지만 걷기의 방향에 맞춰 생각도 방향성을 갖기 시작한다. 양재천 따라 걷는 행인들, 자전거 무리들, 계절의 변화로 시간이 채색되는 모습, 걸으면서 바뀌는 풍경들을 보며 시각의 자유를 찾는다.


 사유는 걷기다. 한 발짝 딛고 다음 발을 앞으로 내딛는 행위에는 어딘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 의지에 자유가 있다. 의지가 없는 자유는 방황이다. '내가 없는' 움직임은 시공간의 흐름과 세상의 중력에 따라 단지 표류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행을 가더라도, 무조건 걷는 시간을 확보한다. 골목길을 걷고, 인터넷 검색이 아닌 직접 눈으로 보고 직관과 감각을 따라 가게를 들어가 보거나, 인간의 속도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걷는 것만큼 가장 인간적인 행위도 없다.


누군가와 걷고 싶다. 선선한 바람이 부르는 공원이었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과거와 현재가 저 멀리 떠 있는 달에서 만나는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걷는다.


손으로만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자신의 발로도”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든다.”라고 소로는 썼다. 그것은 겨울밤을 위해 걸으면서 채색된 감정과 태양의 추억을 축적한다는 얘기다. 우리의 보물, 우리의 진짜 재산은 우리가 받아들여 간직한 심상의 합이다.
행복이란 정확히 그것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불안정하다.
권태란 사유의 공백에 직면한 육체의 부동성이다.
권태, 그것은 부동성에 대한 공허한 저항이다.
걷는다는 것은 한 발을 다른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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