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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Dec 25. 2022

크리스마스 캐럴 너머 들리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

[밑줄독서] - 무라카미 하루키 - 먼 북소리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울리는 캐럴에서 다른 소리가 들린다. 유럽에서의 그때, 연말에는 따뜻하고 활기차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질 정도의 분위기가 그때는 이질적이었는데, 지금은 참으로 그립다. 활기를 잃어버린 2022년의 대한민국. 기분 탓인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스스로 축하할 일을 찾지 않으면 일상성의 관성에 따라 휩쓸리는 그 정도만큼 우리의 인생은 평온하지만 단순해진다. 일상과 이상과의 거리. 그 수많은 공백들...


그 공백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88년을 공백의 해 - <상실의 시대>가 성공하자 나는 굉장히 고독했다. 그리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왜 그랬을까? 표면적으로는 모든 일이 잘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때가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사실 먼 북소리의 상세한 내용, 그러니까 하루키가 로마와 그리스, 시칠리아 섬에서 어떻게 살고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어디론가 떠나야 된다는 목소리가 최근에 계속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이 책의 제목은 먼 북소리이자 동시에 책이 나에게 말을 거는 행위로 동시에 다가오게 된 것이다.


직장인 또는 사회인에게 공백이라는 건 단순히 단어 그 이상의 뜻을 갖는다. '아무것도 없이 비었다'는 뜻과 다르게 어른들의 공백에는 '불안'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건 여유 그 자체라기보다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이유'를 찾는 시간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공백이라는 단어. 공백의 깨달음은 그 순간에는 대단한 깨우침을 얻은 것 같지만, 이내 '감상에 젖어 사물과 현상을 탐구하는 행위' 자체가 직장인으로서 하루를 살아가는 데 크게 필요치 않은 일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될 때, 깨달음의 공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의 공백이란 결국,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과 같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경쟁사를 벤치마킹 하거나, 이전 레퍼런스에서 성공 요인을 분석하거나, 00에서 성공하는 00가지 법칙류의 책을 사서 읽으면, 깨달음의 공백은 더 이상 빈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소리들이 다시 우리를 채우게 되었을 때, 새로운 다짐과 마음가짐으로 내년을 준비하지만, 캐럴 속 단골 주인공 겨우살이처럼 이런 깨달음도 해가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깨달음의 공백과 공백의 깨달음.


간혹 깨달음의 공백과 공백의 깨달음 사이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것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세월이란 앞으로만 나아가는 톱니바퀴라고 나는 막연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얻는 대신에 그때까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질감이 있는 공백. 일종의 부유감 혹은 유동감. 그 3년간의 기억은 부유력과 중력 사이의 골짜기를 흐르며 방황하고 있다.
이질적인 문화에 둘러싸인 고립된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나의 근원을 캐내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문장을 써나가는 상주적 여행자였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고향을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해 간다. 시간과 장소, 때때로 그것이 내 마음속에서 무게를 더해 간다. 나 자신과 시간과 장소라는 세 가지 존재의 균형이 무너진다.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대중 술집에 가는 사람이 있듯이,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여자와 자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달린다. 달릴 때의 느낌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일도 세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호텔 식당의 책꽂이에는 그들이 읽다가 두고 간 책들이 '청춘의 묘지'처럼 즐비하게 놓여 있다.
나는 말하자면 자신의 중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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