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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an 31. 2024

철학이 사라진 시대에서 자기만의 개똥철학을 갖는다는 건

철학이 없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무색무취

철학이 없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무색무취하다.

해가 바뀔수록 사람과 대화하는 게 어렵다. 예의를 차리며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건 온기 없는 따뜻함,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페르소나겠지.


나의 페르소나 중 하나는 매달의 첫 번째와 마지막에 큰 의미 부여를 하는 진지한 척하는 인간. 날짜에 따라 일상성이 변하지 않음에도 굳이 의식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자신을 위한 의식을 만드는 것, 의식을 만들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 달의 마지막에는 잠시 멈추고 무엇이든지 쓰자고 결심하는 것. 그 결심에서 비롯되어 내달에 새로이 집중할 개념과 단어, 사회 현상 등을 정하는 시간 등.


누군가는 생각 없이 사는 게 좋다고 한다. 좋다고 하면 그게 맞다. 본인에게 맞는 방식이 좋으면 좋은 거다. 살다 보니 옳고 그름을 가르는 문제야말로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논리와 이성이, 과학과 합리주의가 '객관적'으로 맞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맞다'라는 표현도 개인의 취사편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취사 '선택'이 아니라 '편취'인 이유는 결국 모든 선택과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이익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또는 그런 여론에 의해 선택되게 만들어져 버린 '보이지 않는 이익'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겠지.


이익의 관점에서만 본 사회는 삭막하다. 삭막한 이익과는 상관없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설령 비난과 비판이 예상될지라도 본인의 생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은 철학에서 나온다. 생철학. 살아 있는 철학에서는 향기가 난다. 예의범절에도 그 사람만의 따뜻함과 형식이 있으며,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도 고유한 희생정신이 있다.


개똥 같을지라도 본인만의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그 사고 체계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 반응이라는 것은 비선형적이라서, 개똥철학이 아니라 정률적인 법칙으로 맞대응하고자 하면 오히려 역효과 난다. 따라서 인터넷 세상에 널리 퍼진 "~ 법칙" 류의 조언들은 반드시 개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누가 그러는데 ~ 이게 맞대

 좋대"라는 식의 간접 화법은 그 사람을 매력 없게 만든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우리 일생에서 대부분의 일상적인 생활보다 몇 번 없는 돌발적인 사건이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가끔 퇴근길에는 개똥 같은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어서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이벤트는 혼자만의 힘으로 비롯되지 않는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걷다가 개똥을 밟게 되확률만큼이나 소중한 사람, 심오한 철학, 의미 있는 대화를 만나기 어려운 이 사회에서 우리 각자가 가진 향기로운 개똥철학흡인력을 갖게 될 것이다.


흡인력은 결국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힘에서 비롯되는데 그래서 개개인의 철학은 개똥철학일 수밖에 없다. 개같이 일하고 똥 같은 상황에서 더 나은 삶을 향한 우리의 목소리는 계속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 개똥 냄새나는 철학의 소유자는 피해야 한다. 사람은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똥으로 건조하지만 재밌게 이야기를 풀고 싶었는데 내공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개와 똥 전문가인 김훈 작가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추천드린다.


특히 월말에 카드값나간 통장 잔고 확인 후 읽으면 허무한 멘탈에 오히려 문장 하나하나가 오롯이 머릿속에 박히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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