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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an 03. 2023

[가장 좋아하는 책] 페터 비에리 - 리스본행 야간열차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도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를 산다는 것,
이 말은 옳고 훌륭하게 들린다.
그러나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내겐 참으로 특별한 리스본행 야간열차. 5년 전, 10유로에 1박을 기준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하여 해외배낭여행을 하던 시절, 숙소 아래는 클럽이 있어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데, 잠을 못 자서 짜증을 낼 게 아니라, 어차피 잠을 잘 수 없다면 이 국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도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취향은 탄생했다. 태어났다. 문득 다가왔다. 어떠한 계기로 우연히 주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찰나의 깨달음, 나와의 대화로 비롯된 일련의 행동들은 나를 만들었다. 소개팅 애프터 100% 필승 대화 소재인 <새벽 5시에 홀로 리스본 거리를 거닐며 그 도시를 온전히 나만이 누렸었던, 23번 트램 경로를 따라 올라왔던 새벽의 그 어스름을 온몸으로 받았던 이야기>는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여행의 순간이자 영화이며 책이었고 사랑이었다.


독서노트를 작성한 이래로 100번 째로 정리한 책이자 100개의 문장을 얻은 소중한 책이다. 한때는 '야간열차'에 꽂혀 강릉행 야간열차와 목포행 야간열차를 타고 혼자 즉흥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야간열차는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지만 말이다 - 2022년 7월 30일 전라선 하행 1513 무궁화호를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정기 운행 야간열차는 폐지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을 다시 돌아본다는 것. 그만큼 오늘이 소중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오늘이 작심삼일의 경계선이기 때문이다(1월 3일). 새해 목표 중 하나로 주 3일 글을 쓰기로 했다. 올해는 스스로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 다짐한 이 마음을 꼭 지켜내고 싶다.


만약 이 글을 우연히 본 당신이 <올해에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까?>, <해외여행 어디로 가면 좋을까?>, <가볍지 않고 생각해볼거리를 주는 영화는 어떤 게 좋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추천이 아닌 예측가능한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새해가 되었지만 다시 반복되는 뻔한 일상성에서 벗어나 스스로 우연을 만들어 인생에 새로운 인연(因緣)을 만들고 싶으시다면,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말이다.


책을 만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은 시작된 것이다. 책을 읽는 순간 여행은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한다. 여행에는 언제나 끝이 있기 마련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아쉬워할 필요 없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말한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라고.


필자가 간직한 100 문장 중에서 10 문장만 공유해 본다. 당신도 이 책에서 평생을 함께할 문장을 언젠가 만나기를 바라며.


1.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2. 우리는 서로에게 이중으로 이방인이 된다. 우리 사이에는 허위적인 외부세계뿐 아니라 외부세계가 각자의 내부세계에 만드는 망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3.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틀리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건 감수성 부족일까, 아니면 추구해야 할 내적인 독자성일까?
4. 자기 삶과는 완전히 달랐고 자기와는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게 가능할까. 자기 시간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자각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5. 다른 사람에게 뭔가 말을 할 때, 이 말이 효과가 있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을까? 우리를 스치고 흘러가는 생각과 상(像)과 느낌의 강물은 너무나 강력하다. 이 강물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우연히, 정말 우연하게도 우리 자신의 말과 일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말을 쓸어내고 지워버린다. 혹시 남겨둔다면 기적이다. 나는 다른가? 내 마음의 강물이 방향을 바꿀 정도로 다른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6. 결국은 자화상의 문제인가? 동의할 수 있는 인생이 되려면 경험하고 이루어야 한다고 오래전에 생각해두었던 결정적인 자화상? (중략)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7. 실망이라는 향유.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실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랴? 또한 이런 발견 없이 자기 인식의 근본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니 실망이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함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랴?
8.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중략)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 장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까이 가고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중략) 다른 곳과 확연히 구별되는 냄새를 맡으면 우리는 외형상으로만 먼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먼 곳에도 이른 것이다.
9.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도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기 자신을 계발할 수 없고, 스스로를 향한 먼 여행을 떠나 지금의 자기가 아닌 누구 또는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 발견할 가능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10. 현재를 산다는 것, 이 말은 옳고 훌륭하게 들린다. 그러나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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