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 모든 순간이 여행
우연이 연이어 다가오는 순간들을
이어 붙이면
그것은 여행이 되겠지
너무 잦은 건 좋지 않고
가끔씩 내리는 소나기만큼만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내 마음 같지 않아
급변풍을 동반한 제주의 굵은 빗발은
남쪽 빛의 도시를 차갑게 적셔 버리기도 한다
제주의 초록조차 회색으로 덮어버린 그 색감에서
수만 년 전 마그마의 뜨거움도 차갑게 식어
재가 되어버린 시간의 온도
이게 여행이겠지
문득 하나의 사물에서도, 자연현상에서도
어떤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에 있는 이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마을 언덕 위
먹구름 사이로 한줄기 존재감을 뽐내는 햇빛과
안단테와 크레센도를 넘나드는 빗소리에
각자의 삶의 리듬과 운율감을 찾을 수 있는
그 발걸음이 여행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