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보컬 없는 트럼펫과 색소폰 메인의 콰르텟. 이곳은 the house of blues and jazz.
북극곰 모양의 하와이안 셔츠와 퓨마 모자를 쓴 연주자의 모습에 (알고 보니 탈모를 가리기 위함이었던) 아무리 jazzy한 음악만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참으로 조화롭지 않은 비주얼을 마주할 때면 눈을 질끈 감고 춤추는 노트에 어느덧 노트 위 내 손도 춤을 추고 있다.
하지만 이내 정말 이 색소폰만이 가진 그 바이브가 아무렇지 않았던 일상에 갑자기 해외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을 만든다. 즉흥 연주는 저 뱃심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앞으로도 해외 출장을 다닐 때면 꼭 재즈바를 가야겠다고 다시 다짐.
(여기서 꿀팁 (1) 물론 다른 술은 너무 비싸니 현지 맥주 1병 정도에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으면, 웨이터들의 압박이 덜하다. (2) 전형적으로 돈은 잘 못 버는 작가의 느낌으로 호텔방에 비치된 종이를 들고, 맥주를 시키며 펜 하나 빌려달라고 하면 준비 완료)
하지만 즉흥 연주가 끝난 후 모든 연주자들이 핸드폰 화면으로 악보를 넘기는 행위에 상하이의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채 시간이 멈춘 듯 와이탄 뒷골목을 지키고 있는 이 재즈바의 모습이 결국 매 순간 늙어가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술에 어정쩡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얼굴 없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없이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2달간의 파견이라는 이방인의 위치에서 나는 아버지라는 책임감 하나로 감당하기 벅찬 압박감과 중압감을 극복하려는 주재원 선배들을 관찰하고 중국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벌어지는 작은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개별적 존재들이 갖고 있는 불만 그리고 불안을 보았다.
망해가는 법인의 주재원 삶이란 항상 극복 방안과 액션 플랜으로 수렴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동기부여가 결여된 현지 직원들의 멱살 잡고 이끌어야 하였으나 알고 보니 그 멱살은 자신의 것이었다. 가끔은 먹먹하기도 했다.
다시 한국으로. 오랜만에 느껴 본 혼자 노는 시간. 노를 젓는 시간. 펜으로 휘젓는 시간. 이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pencling? 너무 단순하다. pen-swimming? 아님 fen(ce)-swimming? 정보 전달과 설득 목적이 아닌 글쓰기는 결국 자신의 심연으로 헤엄치는 행위겠지.
음표가 떠다닌다. 소리들이 귀에 꽂히지 않고, 어디선가 나 자신이 내는 소리와 만난다.
혼자 너무 깊게 들어가면 울타리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이젠 우리만의 울타리를 세우러. 다시.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