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생일을 왜 축하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벌써 피곤하다) 인생에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다는 사실을 너무 어릴 때부터 깨달았었지. 어릴 땐, 생일 파티를 하는데 왜 내가 돈을 써야 하는지가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내 돈도 아니었다.)
부모님 두분 모두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생일이라는 이유로 엄마 아빠가 돈 때문에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차라리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마음이 편했다.
학창시절엔 여름방학을 앞두고 개학일은 언제일지 항상 생각했다. 내 생일이 지나고 개학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일이 다가올 때면 아무런 이벤트 없이 지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면 충분했다. 큰 마음 먹고 생일 선물을 사주셨을 때, 로고가 똑같은 매장에 들러 혼자 환불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땐 영수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라 어쩔 수 없이 돌아왔던 적도 있다.
부모님이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게 일상이었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실제로 물욕이 없는 편이기도 하다.
생일 기념으로 떠난 지금의 항저우 1박 2일 여행 숙소는 100위안 짜리 6인실 게스트 하우스, 오늘도 글쓰는 맛을 살려주는 노트북도 사용한지 10년은 되었다. 핸드폰도 원래 아이폰7 공기계를 얻어 쓰고 있었는데, 해외 USIM 지원이 되지 않아서 무려 아이폰 10 공기계를 빌려서 쓰고 있다.
아무튼 애초에 갖고 싶었던 게 없었던 사람인지, 그렇게 살다보니 무엇을 원하고 갖고 싶은지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상태가 싫지만은 않다. 사실 좋고 싫음에 대한 생각도 없다.
사실 생일은 좀 슬프고 부담스러운 날이었다. 누군가 생일 선물을 주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에 정말로 감사하지만 여전히 선물을 받는 게 굉장히 익숙치 않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반드시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돌려줘야 마음이 편했다. 예를 들면, 누군가 카카오톡으로 간단한 선물을 보내면, 나도 그와 비슷한 선물을 보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드는 것이다. 마음과는 별개로 말이다.
특히 주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 슬프기도 했다. 어쩌면 평생 알 수 없겠지.
타지에서 홀로 생일을 맞이하는 건 유쾌한 일만은 아니지만 타지에 있을 때 오히려 생일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덴마크 교환학생 시절 생일 만이한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브라질 친구 빅터가 하는 말 "축하할 일이 있으면 놓쳐서는 안돼! 인생에 축하할 일들은 앞으로 더 희미해지거든!"
나이를 한 살 또 먹어가니 생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랜만에 사람들과 안부 연락을 주고 받고, 크게 기쁘지 않아도 같이 모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 요즘은 이런 장점만을 보려고 한다.
"그래, 세월이 흐를수록 축하할 일은 적어질텐데 최대한 할 수 있는만큼, 그게 가장 어려운 스스로를 축하하는 일일지라도."
그럼에도 타지에서는 홀로 생일을 보내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건, 그냥 홀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울 수 있다. 기쁜 척 행복한 척 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대로 쓰고 싶은대로 마음 가는대로 할 수 있는 날이 생일을 형용할 수 있는 말이라면, 이곳 중국에서 혼자 보내는 생일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