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독서] 요한 하리 -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
오늘날에는 정상적인
뇌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참여도가 높다는 말은
곧 집중력을 더 많이 빨아들이고
사람들을 더 많이 방해한다는 뜻이었다.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우리는 자신이 노출되는 정보량의 엄청난 팽창과 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준비될 때까지 삶을 미룰 수는 없다. 삶은 우리의 코앞에서 발사된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화면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는 것은 자아를 쿡쿡 찌르고 쑤셨다.
정보를 더 많이 주입할수록 사람들이 개별 정보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싶다면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몰입이란 자아의 상실, 시간의 상실, 내가 전보다 더 커다란 무언가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지금의 경제체제는 잠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의존합니다. 집중력 부진은 로드킬일 뿐이에요. 그저 사업의 대가일 뿐이죠.
사람들이 즉시 나에게 동의하느냐 아니냐는 내가 하는 말이 옳은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 그건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다.
우리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방황할 정신적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메일이 이메일을 낳는다는 것, 내가 멈추면 이메일도 멈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여도가 높다는 말은 곧 집중력을 더 많이 빨아들이고 사람들을 더 많이 방해한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핸드폰을 확인하는 '트레드밀'에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잔혹한 낙관주의에 대한 반론) 스트레스가 그저 생각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특권을 가진 위치'에 있다.
자제력을 키우려고 노력을 할 수 있겠지만, 화면 반대쪽에는 우리의 자제력을 꺾으려고 노력하는 천 명의 엔지니어들이 있습니다.
(과각성, hypervigiliance) 집중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위험의 단서나 증거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는 거죠. 초점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평상시 주의를 기울일 수 있으려면 반드시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자신의 경제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면, 뇌가 가진 능력의 상당 부분이 거기에 쓰입니다 (가소성) 걱정할 필요가 없으면 다른 것들을 생각할 능력이 생기는 것이죠.
음식의 변화가 우리 집중력의 상당 부분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등한시하고 있다.
집중력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뇌는 음식 섭취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오늘날에는 정상적인 뇌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ADHD 진단에 대체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모들이 받는 큰 스트레스'인 것으로 드러났다.
어릴 때는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나면 자신을 달래주고 진정시켜 줄 어른이 필요하다. 이렇게 위로받는 경험을 충분히 하고 나면, 시간이 흘러 성장할수록 혼자서 자신을 달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유전자는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유전자는 환경적 요인에 따라 발현되거나 발현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