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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un 16. 2024

[밑줄독서] 김지수 - 나태주의 행복수업

산다는 건 말이지요...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게 인생이라고

항상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밑줄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밑줄을 긋는 행위는 본인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밑줄을 보며, 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반추하는 행위의 반복은 곧 자신만의 '의식'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밑줄 긋기는 나만의 독서 의식이 되었고, 밑줄은 세상과 나를 잇는 선으로써 'MEETJUL'이 되었다

한 제목에 쉽사리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던 책. 하지만 작가가 누구던가. 가히 대한민국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인터뷰어이자 스토리텔러, 이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에서 그녀는 시한부 삶을 앞둔 그의 말들을 마치 전령처럼 풀어낸 대담자였다. 이어령 선생과 김지수 작가의 관계에서는 '전령'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


<이어령의 마지막수업>을 읽지 않고는 나태주 시인의 행복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연을 자연으로 노년이 되어서도 잃지 않은 초록의 순수함으로 세상을 노래하는 그는 이어령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나태주 그는 노인이지만 노인이 아니었다. "매사 주저앉으면 젊어도 노인이지"라는 짧은 그의 대답에서 책을 뚫고 나오는 풀꽃 같은 에너지가 느껴지도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할 심오한 즐거움은 절대로 미리 다 상상할 수 없다.
정답이 없다는 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이다.    

70대가 되어서야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풀꽃'시인. 늦게 찾아온 행복에 대한 달관의 태도에서 무르익음의 시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각자가 느끼는 불안은 불안으로서 기능하는 떨림의 목적이 있을 것이다. 나무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듯 우리의 불안도 미래를 위한 가지치기와 같은 것이리라.

불안이라...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느낌의 사람입니다.
틀려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나태주 시인은 스스로 무식한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다들 자칭 전문가라며 사기꾼이 판치는 혼란스러운 세상에 스스로의 식자무식을 자신감 있게 드러내는 사람이 나는 좋다.  '다른 사람의 식(識)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 나는 무식해서 다른 사람의 식이 안 들어왔으니 나만의 식이 나온다는 시인의 말. 어렵지 않은 평상의 언어들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식(食)이 되기도 한다. 남녀노소 나태주의 풀꽃을 마음에 품고,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는 가르침은 자고 일어나면 똥이 되어버리는 지식 껍데기들보다 우리를 배부르게 하는 밥이요. 노래요. 옷이리라.  


여전히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 이어령 선생과의 대담집과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OO수업이라는 제목의 형식을 결정했으리라) 나의 식대로 책 제목을 정한다면 [나태주의 행복짓기] 정도가 좋을 듯하다. 포식자의 도시인 서울을 지독히도 멀리하는 그의 향토성 (공주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시를 모내기하여 소시민들을 배 불리는 그의 언어는 '수업'보다는 ‘짓기’ 더 어울린다. '집을 짓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처럼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그의 말은 가르침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일 테니.  

   


밤하늘에 높이 뜬 별만큼 아침 강물에 흐르는 물별이 아름다운 계절이지요. 윤슬, 습기와 윤기가 우리의 본모습.  

서울, 너무 똑똑해서 똑같아지는 파워풀한 포식자의 도시  

가만히 애틋하게. 산문은 내가 쓰는 거지만, 시는 시가 나를 쓰는 거라고.  

요즘엔 어린아이도 안에 화가 가득 차 있어요. 욕구는 과장돼 있고 진짜 마음은 억압돼 있어서 그래요.  

앵그리 맨은 오래 살 수 없어요. 헝그리 맨으로 사세요.  

안 떠는 게 쇼맨십이 아니라 떨면서 그 떨리는 마음을 이용하는 거죠.  

대개의 자식은 예정된 서사 바깥으로 도망치기 위해 평생을 분투한다.  

우정이요? 우정은 상대방을 살리는 겁니다.  

내가 참을성으로 거둔 문장은 내가 알아요  

젊은 시절에는 자기 내면의 샘물로 글을 씁니다. 자기애로 퐁퐁 솟아나는 샘물은 개성이 강하고 똑똑해요. 하지만 나이 먹어서도 자기 샘물로만 글을 쓸 수는 없어요. 연륜이 많아지면 다른 사람 물도 가져와야 해요.  

자연이 끼워주는 시간의 책갈피 같은 것들을 우리는 다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주파수들도 잡지 못하고  

습윤이라는 게 있어요. 좋은 시에는 습기가 있고 반짝임이 있답니다  

물별이야. 물에 뜬 별, 윤슬이지.  

지구상에 친절보다 더 나은 창의성은 없어 보였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느슨해져. 결핍과 기쁨을 감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창작이라는 한자에 비밀이 있어요. 창(創)을 보면 밥 식(食)과 입 구(口) 옆에 칼 도(刀)가 붙어 있는 모양새입니다. 밥 먹는 입을 칼로 찔러야 창작이 돼요. 그냥 놔두면 창작의 꽃을 피우지 못해요.  

우리는 누구나 진심을 들키고 싶어 해요. 진짜 마음은 순전하게 발굴되길 원하죠.  

아내와 시인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요? 은근히 들키기를 기다린다는 거죠.  

매사 주저앉으면 젊어도 노인이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할 심오한 즐거움은 절대로 미리 다 상상할 수 없다. 정답이 없다는 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이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너울거리며 일행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내가 하는 말을 제일 먼저 듣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새삼 새로워요  

서울의 영혼들은 조금 더 살쪄야 합니다. 지성은 팽팽한데 영혼은 너무 헐거워 보여.  

시는 비약을 통해 새 세계를 열어요  

기억은 충격이기도 하고 의지이기도 해요. 중요한 건 인생은 곧 기억이라는 거죠.  

불안이라...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느낌의 사람입니다. 틀려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나는 배운 사람도 아니고 무식한 사람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무식은 다른 사람의 식(識)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예요. 유식이란 것도 어쩌면 남의 것을 이용해서 면피하는 행위야. 나는 무식해서 다른 사람의 식이 안 들어왔으니 나만의 식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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