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지 않은 것이다. : 心不在焉 視而不見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행복과 건축, 넓게 말하면 공간과의 상관관계다. 공간은 상당히 포괄적이고 광대한 주제다. 예를 들어, 공간을 기후의 관점에서 해석한다거나, 공간을 지정학적 또는 그 공간을 구성하는 인류학적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각각의 관점이 유기적이고 복합적이기에 어느 한 요인을 독립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오늘은 덴마크 건축과 건물에 관해 이야기를 같이 나눠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위 문장을 본 후 낯선 환경에 움츠렸던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바꿀 수 있었다. 이 명언의 핵심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지만, 10%도 그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얘기하고 싶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게 벌어진, 주어진 일의 10%가 나머지 90%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일이 다르고 이에 따라 상상할 수 있는, 행동할 수 있는 반응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의 동의어는 지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빌리자면 지혜란 "order things right". 즉, 무엇이 중요한지 경중과 맥락을 따져 올바른 선후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혜롭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지혜는 나이가 아닌 경험에 비례한다. 경험은 대체로 내가 어디 있는지에 따라 그 너비와 깊이가 달라진다. 경험의 사전적 정의는 실제로 보거나 겪고 느낀 일인데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마도 교환학생을 가고자 할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자 지원했으리라.
필자는 해외탐방 공모전의 일환으로 2주간 영국,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을 방문했었다. 한국과는 다른 건물 양식, 아름다운 정원과 야경, 그곳을 가득 채운 수많은 외국인들이 빚어낸 이국적인 광경은 황홀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일반적인 여행과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한 번씩 지나가는 외국인과 10분 이상 대화를 하기로 결심하고, 뜻 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만난 한 노인이 "나는 여기서 사는 게 정말 천국 같아!"라고 얘기했을 때, 본능적으로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었고 그렇게 나는 1년 후 덴마크에서 살고 있다.
공간을 옮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그곳에 있는 건물이 바뀌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리자면 ‘건축은 기억과 희망을 연결하는 행복의 곳’이다. 예를 들어,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로마의 두오모 성당을, <비포 선라이즈>를 본 사람은 '빈 프라터 놀이공원'을, <미드나잇 인 파리>의 에펠탑 등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즉, 감정이라는 추상은 건축으로 구체화되어 기억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재생산되어 그곳을 이루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 문화가 된다.
‘건축물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건축은 좋은 생활과 느낌의 관념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듣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건축은 마치 거대한 상형문자와도 같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그러나, 여행과 거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국적인 건물들이 익숙한 병풍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특히, 건축과 역사 소양이 부족한 내게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점점 그냥 아름다운 건축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건물로 보였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예뻐 보이는 건물이 보이면 브레이크를 밟고, 사진 찍으면서 혼자 감탄했는데, 어느 순간 페달을 전속력으로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무엇을 하든 의미부여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감싸고 있는 건물들에 대해 무지한 것은 본인과 덴마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시티투어에 참석했었다. 예쁜 건물들 사진 찍고 방문하고 즐기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피상적 이해의 누적은 경험이 쌓여 숙성되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채 머릿속에 남아있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토요일 아침에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알랭 드 보통의 표현을 빌렸다. 내 깨달음을 이것보다 더 완벽히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에 격하게 공감한 하루였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즉,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지 않은 것이고, 들어도 못 듣고, 먹어도 맛을 몰랐던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덴마크 하면 보통, 수도인 코펜하겐(København : 쾨벤하운)을 떠올리지만 그 이외의 도시는 알지 못한다. 본인도 그랬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오르후스(Aarhus)는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항구 도시로, 한국의 부산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총 인구가 32만 5천 명 수준으로, 부산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인구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르후스 시청 건축 초기, 건축가는 건물 높이를 플랫(flat)하게 지으려고 했다. 평평하게 지음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시청(City hall)에서 'hall'이 없으면 안 된다고 청원하여, 결국 아래와 같이 상당한 높이의 시계(?)를 갖게 되었다.
이후 이어진 얘기가 재밌었는데, 담당 건축가(Ar ne Jaconsen)는 이 건물을 자신이 설계한 작품 중에 가장 굴욕적인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 오르후스 시내는 중앙 성당과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호텔 일부를 제외하고는 건물들이 문자 그대로 평평하다. 아무래도 인구가 적은 이유도 있겠지만, 더 높고 화려하게 짓기 위해 경쟁하는 대한민국과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오르후스 시내 한복판에는 교회가 있다. 그 앞에는 극장이 있는데, 이 극장이 지어지기 전까지도 나름 스토리가 있다. 교회는 바로 앞에 극장이라는 상업적인 건물이 위치하는 것을 원래 반대했었다. 신성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결국 타협점으로 찾은 것이 건물의 외관은 낡은 상태로 유지한 채, 내부만을 영화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건물 외관을 보면 어울리지 않은 두 개의 얼굴이 보이는데, 건물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웃상과 울상의 악마 얼굴을 넣었다는 스토리가 있다고 한다.
덧붙여, 바이킹의 후손이었던 덴마크인들은 원래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종교가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강인함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건배’용어에도 남아있다. 우리말로는 건배라고 하는 것을 덴마크 사람들은 ‘skoll’이라고 외치는데, 이 용어는 skull, 해골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다. 즉, 적군의 목을 베어 술잔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어쨌든, 과거 덴마크인들은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모습을 나약하다고 여겼기에 그들만의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손에 글러브가 끼워진 예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Aarhus는 2017년 유럽 문화 도시로 선정된 곳인데, 그중에서 ARoS는 Dokk1과 함께 대표적인 랜드마크 건물이다. 건물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이름의 유래도 나름 재밌는데 먼저, Aros는 Aarhus의 과거 명칭이었다. 또한 대문자로 표시된 ARS는 덴마크어로 ART라는 뜻으로 미술관 임을 드러내는 최적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건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원형 무지개 기둥이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건물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걸 이제야 알았냐!”라고.
또한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미술관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이 꽤나 긴데, 여기에도 비밀이 있다. 계단을 쭉 따라 올라가면 도착하는 입구가 4층이다. 이는 지옥(Hell)을 상징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지개는 어떤 의미일까? 위로 올라갈수록 하늘과 무지개에 점점 맞닿아 천국(Heaven)에 도달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니 "아~그래서 ARoS 네가 겉멋으로만 무지개를 두른 게 아녔구나!"라고 속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공간의 확장은 곧 사유의 확장이다. 공간은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고, 그 생각은 구체적인 건물로 재현된다. 끊임없는 재창조의 과정은 새로운 가능성, 기회의 산파 역할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은 훌륭한 건축가가 되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故신영복 교수는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지만, 목수는 주춧돌부터 그린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촉수는 주춧돌과 같다. 누군가는 행복은 주위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동의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니까. 하지만, 행복은 다른 곳에도 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행복 경험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욜로(YOLO)는 더 이상 내세를 믿지 않는다는 확고한 외침이다. 신에게 닿기 위해 건물을 높게 짓는 시대는 끝났다. 어디든 상관없다. 내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건축물을 만나러 어디론가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