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점을 찍는 1시간, 점심 혼자 먹는 남자(7)
뉴욕은
꿈이라는 단어가
다시 생명력을 갖게 되는 곳
The city of benefit of the doubt
2년 만에 다시 찾은 센트럴파크. 홀푸드에서 12불짜리 샐러드를 테이크 아웃하고 잔디밭으로. 혼자 점심 먹을 준비 완료. (바지가 더러워질까 봐 휴지를 깔려다가 그냥 앉는다. 이미 미국의 펄프지 대신 한국에서 챙겨 온 물티슈를 애용하고 있으니) 요즘은 Like a local의 여행 컨셉을 위해 모르는 사람끼리 센트럴파크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 사람도 보인다. (한국사람 눈에는 한국 사람이 왜 이리도 잘 보이는지)
이곳에서만 허용되는 생각을 이어간다. 미지수가 많을수록 미래를 더욱 크게 생각할 수 있음을 - 미지수가 그리는 아름다운 지수 함수의 곡선 - 시간이 흐를수록 예전보다 기울기는 완만. 인생에서 몇 가지 큰 결정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덧 모든 미지수가 상수처럼 보이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 그곳은 우리의 현실.
현실과 벗어난 뉴욕이라는 장소. 뭐든지 두 번째 방문한 곳에는 더 이상 신기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꽃가루를 흩날린다. 나도 모르게 향상심이 피어오른다. 펜슬 타워에 걸린 태양은 달님에게 제자리를 내어주기 싫다는 듯 저곳에 멈춰있는 듯하다. Benefit of the doubt - 새로운 공기와 바람과 구름은 사소한 의심도 새롭게 의식하게 둔다.
혼자 해외에 나가면 꼭 공원에서 점심을 먹어본다. 낯선 사람은 혼자 있는 이에게 말을 건다. 은근히 바란다. 그래서 혼자 먹는 점심은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긴 샐러드와 커피면 충분하다. 고기 메뉴는 추천하지 않는다. 너무 과하지 않게 총비용은 20불 언저리로 통제한다. 그 이상의 비싼 음식을 갖고 공원에 가게 되면, 노숙자들의 타겟이 된다. 우리 숙자 형동생이 욕심내지 않을 만큼의 적당히 가벼운 점심 메뉴가 좋다.
적당히 가벼운 마음을 갖고 사는 것.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일상이 무거운 이유는 미지의 영역이 남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약간의 불안과 떨림을 남기지 못하게 되면, 안정이라는 가면 뒤로 사실 서서히 가라앉는 중일지도.
센트럴파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메트로미술관 뒤 저수지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아님 현실의 벽에 막힌 꿈같은 이야기들이 다시 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뉴욕에서 필리로 돌아가는 암트랙의 경적 소리와 함께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광경은 많은 것을 불러냈다가 그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생각의 흐름이 목적지의 방향과 같은 좌석에 앉는다는 것. 매듭을 통해 거듭되는 생각을 펜으로 묶어 두기. (∞ → ⋈)
타지에서는 언제나 묘한 설렘과 과거의 기억을 아름답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다른 길을 가는 이들은 하루하루 그냥 한다. 원대한 목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 꾸준히 하다 보니 생긴 길. 그 길이 묘하게 직선으로 길게 뻗은 미국의 고속도로와 닮았다는 생각에 이른다. 어떤 음악도 없이 달린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무음의 영역. Mute to root. 말없이 떠 있는 구름 위에 발 없는 꿈들이 걸려 있다. All the dreams in the clouds.
침을 삼키고 숨을 귀로 불어넣는 순간, 현실은 선명하게 내려앉았다. 불꽃을 튀기며 기체의 바퀴는 멈추기 위해 움직인다. 우리의 인생도 언젠가 멈출 그날을 위해, 언젠가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기 위해 끊임없이 좌표를 바꾸며 이곳저곳을 헤매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마일리지로 불리고, 경험이라는 미명하에 인스타각 게시물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내게 그건 가볍지만 가볍지 않았던 산책. 결코 여행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Stroll to one more stride. 하늘과 땅, 바람 그리고 미지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점심 혼자 먹는 시간.